"스타트업 회생 신청 급증"에 투자 매력 낮고
과거 조선업처럼 뚜렷한 구조조정 테마 없어
구조조정 PEF들 사전적 구조조정으로 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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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회생 신청 기업 수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큰 장'이 열렸음에도 불구, 구조조정 펀드를 운용하는 사모펀드(PEF)들은 오히려 손사례를 치고 있다.
최근 회생 시장에 나오는 기업들은 재기 가능성이 낮아 투자 매력도가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이다. 구조조정 펀드들은 현재 보유한 포트폴리오 관리에 집중하며, 신규 투자는 회생절차 돌입 이전의 사전적 구조조정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21일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회생신청 기업은 1094건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코로나19 이후 정부의 대출 만기 연장이나 상환 유예 조치 등으로 인해 억눌려왔던 부실이 터지면서 회생신청이 급증한 탓이다. 2022년 회생절차를 신청한 법인이 661건이었던 것에 비하면 크게 늘어난 수치다.
회생 기업 신청은 늘었지만 구조조정 전문 펀드들은 구조조정할 만한 기업을 찾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회생을 신청한 기업들의 규모가 너무 작거나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를 겪는 기업이 아니어서다. 경영 정상화 가능성이 있으나 현금흐름이 막힌 매물이 아닌, 대부분 규모가 작고 정상화가 어려운 '좀비 기업'이라는 평가다.
특히 과거 하림그룹의 팬오션이나 STX조선해양 등 대기업 그룹사의 딜이 있었던 것과 달리 현재는 그러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최근 회생 절차를 밟는 기업 대부분이 중소기업이며, 특히 '스타트업 붐'이 꺾인 이후 스타트업의 회생 신청이 크게 늘었다는 설명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저금리 시기에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던 스타트업들이 대거 회생을 신청하고 있는 점이 특이점"이라며 "코로나19 이후 금리는 올랐는데 유지 비용은 계속 내야 하고, 투자 유치는 점점 어려워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과거 조선업 같은 명확한 구조조정 테마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신규 포트폴리오 확정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때 조선업은 대표적인 시클리컬(경기순환) 산업으로 턴어라운드 가능성이 있는 데다, 도크나 선박 등 담보가치도 충분해 구조조정 펀드들의 주요 투자 대상이 됐다. 성동조선해양, STX조선해양, 신한중공업, 한진중공업, 대한조선 등이 모두 기업구조혁신펀드의 지원을 받았다.
담아갈만한 회생 매물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구조조정 하우스들은 회생절차가 개시되기 전 선제적으로 자금을 투입해 재기를 돕는 사전적 구조조정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사후적 구조조정은 회생절차가 개시된 기업을 M&A를 통해 구제하는 방식이라면, 사전적 구조조정은 부실이 현실화되기 전 저성과·저효율 사업을 정리하는 방식을 뜻한다.
회생기업에 대한 투자 매력도가 떨어지고 사전적 구조조정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자 기업구조혁신펀드의 앵커 투자자인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는 사후적 구조조정 범위를 넓히기도 했다. 기업구조혁신펀드 5호부터 사후적 구조조정 범위를 회생 절차 기업과 워크아웃 기업에서 신용위험평가 C등급까지 확대했다.
구조조정을 전문으로 하는 한 PEF 관계자는 "구조조정펀드의 주요 투자 대상은 지금 당장은 힘들어도 '턴어라운드'가 가능한 기업인데, 최근 회생절차로 나오는 기업은 그런 곳들이 보이지 않는다. 몇 십억 규모의 좀비 기업들이 대부분"이라며 "자연히 사전적 구조조정을 통한 투자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