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차주여서 상환 리스크 적은데, 금리는 비교적 높아
신한·교보 등 태영 워크아웃 때 도움 준 금융사들 '한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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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실률 60%였다면 보통은 엄두도 못 냈을 거예요. 하지만 차주가 국민연금이었잖아요"(한 금융권 관계자)
국민연금은 IRDV·태영 컨소시엄으로부터 서울 마곡지구 원그로브(CP4)를 인수하며 1조9000억원 규모의 담보대출을 실행했다. 조 단위 빅딜이라는 점도 있었지만, 높은 공실률이란 위험요소에도 불구하고 금융사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화제가 됐다. 주관사 신한은행을 필두로 농협중앙회, 교보생명, 현대해상, DB손해보험 등 국내 주요 금융사들이 대주단으로 나섰다. 대출 기간은 45개월이다.
현재 원그로브의 임대율은 40% 수준에 그친다. DL이앤씨가 대형 임차인으로 나섰고 LG그룹 계열사들의 입주가 예정돼 있으며, 국민연금과의 관계 강화를 노리는 글로벌 자산운용사들도 입주를 준비 중이다. 다만 대부분이 소규모 임차여서 공실 해소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공실 리스크가 오히려 금융사들에겐 기회가 됐다. 이번 대출에서 금융사들이 확보한 금리는 4.8% 수준이다. 원그로브가(46만㎡) 콘래드호텔이 입점한 여의도 IFC(50만㎡)에 버금가는 초대형 프라임급 오피스임에도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부동산 자문사 컬리어스에 따르면 작년 서울 핵심 권역 프라임급 오피스의 선순위 담보대출은 4% 초반에 성사된 바 있다.
이에 이번 담보대출에는 금융사들의 참여 경쟁이 치열했다. 60%에 달하는 공실률에도 불구하고 1조9000억원 규모의 담보대출 모집에 3조원의 자금이 몰렸다. 금융권에서는 국민연금이라는 최상급 신용도를 가진 차주를 상대로 시장 평균을 웃도는 금리를 확보할 수 있는 '기회'로 봤다는 분석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서울 소재 우량 오피스 담보대출 금리가 최근 4% 초반까지 하락했는데, 국민연금이 보유한 오피스빌딩에 대해 5% 가까운 금리를 받을 수 있었다"며 "차주의 상환능력과 금리를 봤을 때 무조건 많이 참여하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치열한 경쟁 끝에 과거 어려움을 함께 했던 금융사들이 승기를 잡았다. 지난 4월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신청으로 원그로브 공사가 중단될 위기에 처했을 때, 이들 금융사가 추가 자금을 제공하며 사업을 지원한 바 있다.
당시 필요했던 3700억원의 공사비 중 신한은행이 2400억원가량을 단독으로 부담했고, 교보생명, KB국민은행, 산업은행, IBK기업은행 등이 나머지 1300억원을 분담했다. 이런 '공'(?)을 인정받아 이번 담보대출에서도 이들이 우선적으로 참여 기회를 얻은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이 같은 배경이 이번 담보대출 참여 규모를 결정지었다는 평가다. 주선사를 맡은 신한은행은 6600억원으로 최대 규모를 차지했고, 제주은행(300억원), 신한캐피탈(500억원) 등을 포함해 신한금융그룹 차원에서 총 7400억원을 투입했다. 당시 공사비 지원에 참여했던 교보생명 역시 1800억원 규모로 대출에 참여했다. 양사의 참여 규모만 9200억원에 달한다.
결과적으로 원그로브는 국민연금과 금융사들의 '희비'가 엇갈린 거래가 됐다. 임차인 모집으로 골머리를 앓는 국민연금과 달리, 금융사들은 우량 차주를 상대로 45개월간 프리미엄 금리를 확보하며 만족감을 드러내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공실 이슈와 별개로 금융사 입장에선 '잘한 딜'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