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치 쌓인 오너와 투자자들,요구사항은 늘어나
"시장이 똑똑해졌다" 창의력 발휘해야 하는 IB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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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내 M&A(인수합병) 시장이 고도화되면서 거래 난이도가 더 높아지고 있다. 대기업의 카브아웃(Carve-out) 거래도 계열사 매각 수준이 아니라, 사업부 중에서도 일부 사업만 매각하는 식이다. 오너 등 거래 당사자들도 단순 조달 지원을 넘어 종합 솔루션을 요구하다보니, 시장에 출회된 딜이 많아도 막상 금융사 및 IB들이 '쉽게' 접근할 건은 많지 않은 분위기다.
CJ제일제당의 바이오 매각의 경우 CJ제일제당의 바이오 사업 부문 중에서도 미생물을 원료로 식품 조미 소재와 사료용 아미노산 등을 생산하는 그린바이오만 매각에 나선 거래다. 해외 자산 등 자산평가부터 검토할 요소들이 많아 실무적으로 난이도가 높은 거래로 평가된다.
DL그룹의 DL에너지는 석탄 사업을 제외한 사업 부문 매각에 나섰다. 현재 에너지 인프라 중심 운용사에서 LNG와 신재생에너지 일부 사업 부문을 인수하려고 나선 것으로 파악된다. 에너지 사업이 사실상 ‘석탄’과 ‘신재생’을 완전히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딜의 난이도가 높다는 지적이다.
한 PEF 관계자는 “최근에는 정말 잘 아는 사업군이 아닌 이상 검토도 나서지 않고 있는데, 대기업 등 셀러 측도 애초에 적임자를 찍어두고 딜을 시작하는 것이 유행이다”라며 “공장 몇 개만 매각한다든지 사업부 내에서도 일부만 떼어낸다든지 하는 식으로 난이도가 높은 딜들이 많아졌는데, 이런 딜은 웬만한 전문가가 아니면 정확하게 사업 파악도 어렵다”고 말했다.
다른 글로벌 PEF 관계자는 “(투자자들도)경험치가 많이 쌓여서 과거 어려움을 겪었던 사업 부문 딜의 경우에는 특별히 전문성이 생긴 것 아니면 아예 보지 말자는 생각”이라며 “서로 니즈가 확실해지다 보니 최근에는 옥션 딜보다는 대부분 프라이빗 딜 위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계 강화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통상 선호하는 오너 딜도 난이도는 더욱 올라가고 있다. 예로 증권사 등 금융사의 경우 자금 조달의 제한된 역할을 수행했다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제는 종합 솔루션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
추후 이익을 보장받기 위한 언아웃(Earn-out) 방식에 대해서도 오너들이 ‘창의적인’ 구조를 요구하는 사례가 많아졌다고 전해진다.
가령 최근 하이브의 방시혁 의장과 사모펀드(PEF) 들이 상장 전 맺은 언아웃 조항에 대해 화제가 된 바 있다. ‘보는 눈’이 많아지면서 법에 위반되는 내용이 아니어도 정서상 여론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구조는 피하려고 하는 경향이 세졌다는 것이다.
고려 사항이 늘어나다 보니 금융사 입장에서도 애초에 사법 리스크가 포함돼 불확실성이 장기화할 거래는 더욱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한미약품, 아워홈 사례 등 재벌 경영이 3대로 넘어가면서 가족들의 경영권 분쟁도 많아졌다. 이렇다 보니 법적 리스크 해소 여부가 고려 1순위가 됐다. 금융사 투자심의위원회에서도 가장 먼저 나오는 질문은 "걸려있는 소송 리스크가 없나"라고 전해진다.
거래 구조가 복잡해질수록 투자자들 입장에서도 단기 엑시트(투자금 회수)를 할 수 있는 하방 안전장치 마련에 신경을 쓰고 있다. 특히 전체 계약 만기까지 기다리지 않고, 중간에 일부씩 엑시트를 할 수 있는 장치를 넣으려는 경향이 더욱 강해졌다. 과거에는 법적인 그레이존을 감수하면서까지 공격적으로 딜을 따내던 하우스들도 최근에는 훨씬 ‘세련된’ 계약서를 내밀고 있다는 평이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오너에게 보고하고, 'OK'를 받는 식으로 딜 프로세스가 진행됐다면 최근에는 셀러 측도 앞서 여러 금융사 및 자문사에서 제안을 받아보고, 적정 시장가 등을 알아보고 딜을 진행한다"며 "서로 요구하고 따지는 게 많아졌는데, 오너들도 똑똑해지고 금융도 고도화된 결과"라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기업 측에서 먼저 딜을 결정하고, 금융사 및 자문사의 조력을 받아 거래를 진행하는 정형화된 거래가 줄고 비정형화된 거래가 더욱 늘어나고 있다는 평이다. IB든 PEF든 기업들의 니즈를 파악해 먼저 솔루션을 제안하는 사례가 더욱 많아진 것도 이 때문이라는 평이다.
기업들이 외부에서 IB 인력 등을 영입해 자체적인 이해도를 높인 점도 고려된다. 최근 대기업의 인수 사례 중 가장 '빅딜'로 꼽히는 한화의 아워홈 인수 거래도 한화 그룹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실무를 진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 IB 업계 관계자는 "이전에는 기업에서 '팔아달라,사달라' 해야 움직였다면 이제 PE든 자문사든 모두 IB처럼 아예 기획성 M&A를 만들어야 하는 시대"라며 "대형 PEF들도 최근에는 대부분 먼저 메이킹 해서 제안하는 식이고, 기업 사정을 잘 아는 자문사들도 먼저 딜을 만들어서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