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이후 직접 취득은 2023년 2월 뿐
상장사들 규제 약한 신탁계약 방식 활용 多
지난해 법 개정…올해 직접 취득 늘어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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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금융지주(이하 KB금융)가 연초부터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자사주 매입에 나섰다. 이번 자사주 매입은 KB증권에 위탁해 직접취득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KB금융은 과거 신탁계약 방식을 주로 활용해 왔다는 점에서 그 배경에 관심이 모였다.
지난해 말 시행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 여파로 풀이된다. 상장사가 자사주를 신탁으로 취득 및 처분할 때의 규제가 크게 강화된 것이다. KB금융을 비롯, 올해엔 자사주를 신탁 대신 위탁을 통해 직접 취득하는 사례가 늘어날 전망이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금융은 KB증권을 통해 지난 6일부터 자사주를 장내매수하고 있다. 오는 5월 5일까지 총 52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취득할 예정이며, 취득한 자사주는 전량 소각한다. KB금융은 이러한 내용의 자사주 취득·소각 계획을 5일 이사회에서 결의했다.
KB금융의 이번 자사주 취득 방식을 두고 업계의 관심이 모인다. 그동안 빈번하게 활용했던 신탁계약을 통한 취득이 아닌, 직접 취득에 나선 까닭이다.
실제로 KB금융은 과거 자사주 취득 시 대부분 신탁계약을 활용해 왔다. 지난해에도 삼성증권과의 신탁계약을 통해 자사주를 매입했다. 지난 2016년부터 자사주를 매입할 때, 직접 취득한 경우는 2023년 2월 3000억원 규모 자사주 취득에 나섰을 때 뿐이다.
KB금융이 올해 직접 취득에 나선 것은 지난해 12월 31일부터 시행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석된다.
개정안은 신탁계약을 통한 자사주 매입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다. 기존에는 기업들이 신탁계약을 활용할 경우 매입 공시 물량보다 적게 매수해도 되고, 처분 시 별도의 공시 의무가 없었다. 이로 인해 자사주 취득이 주가 관리 수단으로 악용될 여지가 있었다.
실제로 지난해 일부 기업이 기존에 계획했던 물량보다 적은 물량의 자사주를 매수하고도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았다.
지난해 3월 유가증권 상장사 스틱인베스트먼트는 신탁계약을 통해 자사주 50억원을 취득하겠다고 공시했지만, 계약 기간인 9월까지 13억원의 자사주만 매수하는 데 그쳤다. 이후 계약기간 연장을 통해 추가로 34억원의 자사주를 매수했지만, 당초 공시했던 기간을 어긴 셈이다.
코스닥 상장사 티이엠씨 역시 지난해 1월 4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신탁방식으로 취득하겠다고 밝혔지만, 계약기간이 끝난 7월까지 실제 취득한 자사주 규모는 29억원에 그쳤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자사주를 신탁계약을 통해 취득한다고 공시해놓고, 공시한 물량만큼 매수하지 않는 경우는 과거 비일비재 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자사주 취득 공시에도 주가가 반응하지 않고, '약속을 지킬 지 안 지킬 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던 이유"라고 말했다.
새로운 시행령에 따르면, 기업이 자사주 신탁을 통해 매입을 진행할 경우 기존 신탁계약이 종료된 후 1개월이 지나야 새로운 신탁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또한 신탁계약을 통해 매입한 자사주의 처분 시 공시 의무도 강화됐다.
KB금융은 지난해 7월과 10월, 삼성증권과 각각 4000억원과 1000억원의 자사주 취득 신탁계약을 체결했다. 해당 계약의 계약기간은 각각 올해 3월과 4월까지다. 작년까지는 계약 기간 중에도 신규 신탁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올해부터는 금지된 탓에 올해 직접 취득에 나선 것이란 설명이다.
금융권에서는 신탁계약을 통한 자사주 매입 규제 강화가 다른 기업들의 주주환원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기존에 신탁 방식을 선호하던 코스닥 상장사들을 중심으로 직접 매수를 늘릴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지난해 코스닥 상장사들의 자사주 취득 387건 중 직접 취득은 111건에 불과했고, 나머지 267건은 신탁계약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취득 규모 역시 신탁 비중이 76%에 달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자사주 매입은 주가 부양 효과와 주주 가치를 높이는 수단으로 활용되지만, 일부 기업들이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있었다"라며 "올해부터는 기업들이 보다 신중하게 자사주 매입 전략을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