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공동추천 논의됐지만 진척 없어…은행장 '제청권' 장벽 넘어야
KB금융 노조, 지난해 이어 올해도 사외이사 추천 안해
외국인 주주 표결 장벽에 '6전6패'…노조 방향성도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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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금융권 이사회에서 노조추천 사외이사를 찾아보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노사공동추천방식을 추진했던 IBK기업은행은 사외이사 공석에도 이렇다할 진척이 없는 상태다. KB금융 노조 또한 표 대결에서 번번이 패하는 등 고배를 마시자 추진 의지가 한풀 꺾였다는 평가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기업은행 노동조합은 사측에 꾸준히 노조추천 사외이사 도입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석인 사외이사 자리에 노조가 추천한 사외이사가 선임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기업은행 사외이사 정족수는 중소기업은행법상 4명인데, 현재 사실상 2명이 공석인 상태다. 김정훈 전 사외이사는 지난해 최대 임기를 채워 물러났고, 정소민 사외이사는 후임이 구해지지 않으면서 임기 만료에도 1년을 연장해 사외이사직을 맡고 있다.
기업은행은 사외이사 후보가 추천되면 기업은행장 제청을 거쳐 금융위원장이 임명하는 구조로, 주주총회 득표가 필요한 KB금융과는 선임 절차가 다르다.
기업은행 노조가 사외이사 도입을 꾸준히 추진할 수 있는 것은 득표에 대한 부담이 없기 때문이란 평가도 나온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민간회사들은 주총에서 표 대결로 당선여부가 정해지는데 기업은행은 사외이사 공석이 있으면 금융위 승인을 받아 후보를 넣을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기업은행장의 '제청권'을 얻어야 하는 것은 관건이다. 국책은행 특성상 기업은행 사외이사는 친정부 인사를 영입하는 경우가 많은데, 과거 기업은행장이 금융위에 제청하는 사외이사 후보들 중 노조가 추천한 후보 대신 현 정부와 가까운 사측 추천 인물들이 주로 추천되면서 잡음이 불거지기도 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노조가 사측에 노조추천이사를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긴 하지만 지금 정부에서는 크게 기대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김성태 기업은행장이 노조추천이사제 대신 노조와 은행장이 공동으로 사외이사를 추천하는 '노사공동추천방식'을 추진하며 함께 사외이사 후보 협의에 나서기도 했지만 실질적인 진척이 없는 상태다.
기업은행 한 관계자는 "특정 임무와 관련해 노사 공동으로 추천하는 게 어떻냐 정도의 논의가 있었지만 구체적인 진행 상황은 없다"라고 설명했다.
KB금융 노조는 이번 주주총회에 사외이사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통상 지난해 주주총회 날짜 기준 1년이 되는 시점의 6주 전인 2월 7일까지는 추천 의견이 들어와야 하지만 별도의 후보 제안이 없었다.
KB금융 노조의 사외이사 추천 안건이 상정되지 않은 건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다. KB국민은행 노동조합은 지난 2017년 4월 당시 박홍배 전 KB국민은행 노조위원장(現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및 류제강 전 노조위원장 취임 이후 6년 동안 매년 사외이사를 추천해 왔다.
분위기가 바뀐 것은 작년부터다. 지난 2023년 3월 KB국민은행에 신임 위원장이 취임하고, 집행부가 바뀌면서 방향성이 달라졌다는 평가다. 일각에선 지난 6년 동안 주총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셔 왔던 만큼 굳이 사외이사 추천에 나서지 않는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KB금융 노조가 마지막으로 노조추천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했던 지난 2023년 주주총회에서는 관련 안건에 대한 찬성표가 6.39%에 그치면서 부결됐다.
글로벌 의결권 자문기관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은 과거 주총에서 KB금융 노조추천 사외이사 선임안건에 줄기차게 반대 권고를 냈는데, 약 75%를 차지하는 외국인 주주들의 표를 얻기가 어려워지면서 현실적인 안건 통과가 쉽지 않은 상황이 조성됐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매년 투표에서 안건이 통과되지 않으니 '해봤자 안 된다'는 분위기도 있고, 노조 성향도 바뀌면서 굳이 후보를 추천할 필요가 없겠다는 전략적인 판단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