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하한가 직행 늘면서 리스크 현실화
주가 회복 못하면 고스란히 주관사 부담
풋백옵션 의무 '테슬라 상장' 주관 꺼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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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지난 연말부터 이어져 온 공모주 시장의 한파가 연초까지 지속하면서, 풋백옵션(환매청구권)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풋백옵션은 공모주 시장이 좋지 않을 때마다 늘상 언급이 되던 것이었지만, 실제 실현 물량은 소수에 불과해 주관사의 부담이 크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상장 당일부터 하한가로 직행하거나 급락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주관사의 풋백옵션 리스크가 현실화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주관사들 사이에서는 풋백옵션 '의무 부여' 대상인 특례상장을 주관하는 것 자체에 부담감을 느끼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2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상장한 패스트캠퍼스 운영사 데이원컴퍼니는 상장 이후 18일까지 공모가(1만3000원) 대비 주가가 약 46% 떨어졌다. 상장 당일에만 주가가 40% 하락해 하한가를 기록했는데, 이는 지난 2023년 6월 IPO 제도가 변경된 후 첫 번째 사례다.
지난 4일 상장한 보닥 운영사 아이지넷도 상장 이후 18일까지 공모가(7000원) 대비 주가가 약 43% 떨어졌다. 아이지넷 역시 상장 당일에만 주가가 약 38% 하락하면서, 하한가에 근접했다. 상장 후 2주가 넘게 흘렀지만, 아직까지 공모가는 커녕 상장 당일 종가조차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이익 미실현 특례와 사업모델 특례 트랙으로 상장했다는 점이다. 시장에서는 소위 '테슬라 요건'이라고 부른다. 상장 요건에 미달되지만 주관사가 추천하는 기업에 한해서 상장 기회를 주는 특례 상장제도로, 미국 전기차 기업인 테슬라가 적자였음에도 기술력을 인정받아 2010년 나스닥에 상장한 것을 벤치마킹해 2017년 도입된 제도다.
'테슬라 상장'은 현재보다는 미래 성장성에 기반을 둬 다소 위험성이 있는 만큼, 주관사는 의무적으로 풋백옵션을 부여해야 한다. 풋백옵션은 공모주 주가가 부진할 경우, 공모주 투자자가 3개월 내에 공모가의 90% 가격에 주관사에 되팔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대상은 일반투자자가 청약으로 배정받은 공모주에 한정된다.
풋백옵션은 공모주 시장이 한파를 겪을 때마다 주관사의 리스크로 떠올랐지만, 그동안 실제 부담을 느끼는 경우는 많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공모주 일반투자자들의 경우, 상장 당일 단기 시세차익을 노리고 매매하는 경우가 많아 주가가 10% 넘게 떨어지기 전에 주식을 처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다만 올해처럼 첫날부터 주가가 하한가를 기록하는 경우라면 이야기가 다르다는 설명이다. 데이원컴퍼니는 장 시작부터 하락 출발한 뒤 꾸준히 하향곡선을 그리다 장 마감 즈음을 기점으로 하한가를 기록했다. 일반 투자자들이 매도 시점을 잡기 어려웠다는 평가다. 아이지넷 역시 장 시작부터 풋백옵션 기준가인 10% 이상 하락 출발했고, 이후 주가를 회복하지 못했다.
과거 주관사가 대규모 풋백옵션 행사로 손실을 입었던 사례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2022년 상장한 이차전지 분리막 제조사 WCP는 상장 이후 주가가 급락하면서 수백억원 규모의 풋백옵션이 행사된 바 있다. 당시 주관사인 KB증권이 해당 물량을 되사주면서 단기적으로 영업이익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KB증권은 이를 장기보유하며 2023년 6월 주가가 올랐을 때 전량 매도해 60억원의 차익을 거두며 마무리됐다.
실제로 현재 데이원컴퍼니의 경우 일부 투자자들이 풋백옵션을 행사한 것으로 파악된다. 현재까지는 그 물량이 많지 않아 주관사 차원에서의 손실이 크지 않지만, 풋백옵션 행사 기한까지 주가가 회복되지 않으면 추가 물량이 쏟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평가다. 데이원컴퍼니는 미래에셋증권이 대표주관을, 삼성증권이 공동주관을 맡았다.
이에 주관사들 사이에서는 의무적으로 풋백옵션을 부여해야 하는 '테슬라 요건' 상장 주관 자체에 부담감을 느끼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지난해 상반기 공모주 시장이 활기를 보이던 당시, 주관사들이 자발적으로 풋백옵션을 부여했던 모습은 자취를 감춘지 오래다.
주관사들은 기술특례로 상장을 추진하는 기업들에 대해 가급적 '기술성 평가'를 받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기술성 평가를 거치면 테슬라 요건처럼 풋백옵션을 의무적으로 부여하지 않아도 되는 까닭이다. 다만 타 업종에 비해 기술성 평가 통과가 어렵다고 평가받는 로봇 업종의 경우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란 평가다.
코스닥 상장을 주관하면, 매출 주식의 3%나 10억원 규모 중 더 낮은 금액을 의무적으로 보유해야 한다는 점도 부담이다. 가뜩이나 공모주 시장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풋백옵션 리스크까지 짊어져야 하는 까닭에 주관사들이 '테슬라 요건' 상장을 주관하는 데 부담이 더 커진다는 분석이다.
한 증권사 IPO 본부장은 "연초부터 공모주 시장이 좋지 못해 주관사들의 경우 더욱 보수적인 스탠스를 취하는 것이 불가피해졌다"라며 "특히 테슬라 요건으로 불리는 특례 상장의 경우, 주관사가 짊어져야 할 리스크가 더 커 정말 주관사가 판단하기에 경쟁력이 있는 회사가 아니고서는 주관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