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수혜 분명하지만 그 정도엔 의문부호
건조 역량 유한하고 고부가 수주 쉽지 않아
추가 비용 부담에 미국측 청구서도 감안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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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조선 3사의 주가는 작년 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 조선업과의 협력'을 언급한 후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그러나 최근엔 미국발 호재가 실질적으로 얼마나 조선사의 이익에 기여하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조선사들의 건조 역량이 무한하지 않고, 미국에서 얼마나 많은 투자와 양보를 요구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증권가에서도 실리를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며 조선주들이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작년 11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협력 요청 후 조선주는 한국 증시 최고의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트럼프의 언급부터 지난 19일까지 한화오션 주가는 181%, HD현대중공업은 91%, 삼성중공업은 48% 올랐다. 한국이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군함 건조 및 수리 분야에서 톡톡한 수혜를 입을 것이란 기대가 반영됐다.
한화그룹은 작년 12월 미국 필리조선소 인수를 마치며 미국 진출 교두보를 마련했다. 지난 18일(현지시간)엔 미국의 상·하원의원이 필리조선소를 방문하며 기대감이 최고조에 올랐다. 마크 켈리(61·애리조나) 미 의회 민주당 상원의원은 "한국 조선업은 기술력과 생산성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 미국의 가장 강력한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한화에 이어 HD현대중공업도 미국 조선사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 조선업이 중장기적으로 미국발 수혜를 입을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올해 들어선 미국의 대중(對中) 압박이 강화한 데 따른 수주 증가 효과까지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그 수혜의 정도가 지난 수개월간의 주가 폭등을 뒷받침할 정도냐는 데에는 의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조선주에 거품이 껴 있으며 차분하게 득실을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투자증권은 20일 '조선:하선(下船)' 보고서를 통해 미국발 수혜를 분석했다. 미 해군 함정 신조 전체 시장 규모는 30년간 1조2033억 달러(1700조원)다. 이 중 한국 조선사들이 30년 간 '서비스 가능한' 목표 시장 규모는 전체 대비 46.1%인 5550억 달러(790조원), '실질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시장은 전체 대비 16.1%인 1934억 달러(276조원)로 추정했다.
한국투자증권은 2054년까지 30년 간 미국 군함 신조를 통해 한화오션이 약 5조1000억원, HD현대중공업이 약 5조6000억원의 잉여현금흐름을 창출할 것으로 내다봤다. 양사가 미 군함 수주를 통해 기대할 수 있는 추가 가치는 대략 5조원이고, 이를 감안하면 현재 주가에서 더 이상의 상승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20일 조선주는 일제히 급락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해당 보고서 내용에 공감한다"며 "이제껏 조선주가 급등했던 배경에는 함정 수주에 대한 기대감이 컸는데, 함정 모멘텀이 약해지면 주가는 당분간 횡보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지난 5일 미국 의회에서 미 해군 함정을 동맹국 조선소에서 건조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한국 조선사들이 고부가가치 군함을 얼마나 수주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핵잠수함과 항공모함이 예산 비중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데, 한국 조선사들은 건조 체계 차이와 건조 능력 문제로 수주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한국 조선사들은 주요 선박의 껍데기만 만들거나 수익성이 높지 않은 소형 수상함과 지원함을 수주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시장에선 미국이 해군 함정 발주의 대가로 동맹국 조선소의 현지 투자, 기술 이전, 기술직 교육 프로그램 지원 등을 요구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어떤 형태로든 미국 조선소 재건에 기여하도록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장기적으로는 한국 조선사가 미국 조선업 부흥을 위한 수단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
다른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한미간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며 "다만 해군 준비태세 보장법안의 세부 디테일을 살피고, 협력의 실익을 다시 살펴볼 필요는 있다"고 전했다.
가장 수혜를 많이 입은 한화오션 투자에 유의해야 한다는 시선도 있다. 특히 일각에선 필리조선소에 대한 기대치기 과도하게 반영됐다는 평가가 따른다. 정상화에 얼마나 자금이 필요한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추가 설비 투자 부담이 있고, 기수주 잔고를 소화하기 위한 인적·물적 비용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인력난은 필리조선소를 운영하는 데 가장 큰 난관으로 꼽힌다. 기술자 현지 파견을 통해 숙련공을 양성한다 해도, 이후 다른 조선소로 이탈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지적이다. 조선업은 숙련된 기술직 인력이 핵심 경쟁력으로 꼽히는데, 미국과의 협력이 확대될 경우 한국의 조선 기술이 미국으로 이전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한화오션이 필리조선소를 헐값에 인수했지만, 향후 정상화를 위해 몇십억 달러를 추가 투입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며 "비싼 인건비, 추후 발생할 인력 유출 문제를 고려한다면 자금을 더 투입하는 것이 득이 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