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모집은 "판다"로 변질…인수자부터 가격까지 공개
주관사 뽑기 전부터 '투자자 갈등' 수면위로
IB는 거래 기근인데 로펌은 송무 늘어 함박웃음
간보는 대기업들 vs 외면하기 시작한 GP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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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현재 우리나라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엔 애드벌룬(광고를 위해 공중에 띄운 풍선)이 잔뜩 떠 있다. 대중에 공개된 거래 가운데 매도자(Seller)와 원매자(Buyer)가 테이블에 마주 앉아 진지하게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거래는 실상 몇 개 되지도 않는다.
매도자 측의 장래 계획은 이미 "(회사를) 판다" 또는 "(매각가) 얼마를 희망한다"로 변질되는 사례들이 빈번하다. 매도자 측이 원했든 원치 않았든, 앞서 나간 광고(?)들은 매각 거래가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을지 판단하는 척도로 작용한다.
최근엔 매그나칩반도체가 4년 만에 매각에 시동을 걸었단 소식이 전해졌다. 이미 '타의'에 의해 LX, 두산, DB그룹 등이 인수후보로 낙점된 상태. 매각측이 진정성 있게 매각을 추진하는지도 모호하지만, 이와 별개로 원매자로 거론된 기업들 상당수는 매그나칩에 관심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매도자 입장에서야 주목받은김에 매각을 시도해볼 가능성도 있으나 현재 상황에선 쉽지 않을 것이란 게 투자 업계의 전반적인 시각이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A) "반도체 산업은 불과 몇 년전과 비교하면 경쟁, 사업 구도가 확연하게 뒤바뀌었는데 매그나칩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지부터 미지수이다"며 "성사 가능성을 따지기는 어려운 분위기"라고 말했다.
베이커리 브랜드 런던베이글뮤지엄은 매각설과 함께 원매자와 구체적인 몸값까지 거론됐다. 런던베이글이 지난해 상반기부터 투자자를 모집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단 경영권 매각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알려진 직후 운영사인 엘비엠은 "매각 추진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며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러나 이미 기업가치 3000억원을 희망한다는 가격과 원매자까지 거론되기 시작했다.
글로벌 사모펀드(PEF) 한 임원급 관계자(B)는 "런던베이들의 실적을 구체적으로 뜯어봐야겠지만, 3000억원이란 숫자 자체가 거품이 많이 껴있다고 본다"며 "매도자 측의 의도와 무관하게 시장에 이미 이렇게 알려진 이상, 투자자 모집 또는 M&A 과정에서 매도자와 인수자측 모두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센트로이드PE는 글로벌 골프 브랜드 테일러메이드의 본격적인 투자금 회수에 앞서 이미 투자자와의 갈등이 수면위로 드러났다. 최대한 많은 투자금을 회수해야 하는 센트로이드, 그리고 최소한의 자금으로 경영권을 인수하고 싶은 F&F 간의 갈등이다. 관심을 보이는 원매자가 있는지 여부를 떠나 아직 주관사도 선정하지 않는 단계지만 이미 법적 분쟁으로까지 번질 조짐이다.
국내 PEF 업계 한 대표급 관계자(C)는 "양측의 갈등이 이미 일정부분 예견된 상황이긴 하지만, 본격적인 매각 작업에 앞서 갈등이 불거지면 향후 거래에서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라며 "센트로이드는 테일러메이드의 성장세를 증명했고, 다수의 투자자들에게 이를 알림으로써 일정 부분 긍정적인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주주간 또는 투자자간 갈등이 법정분쟁으로까지 이어진다면, 이를 통해 가장 큰 수혜를 보는 곳은 역시 로펌업계다. MBK·영풍,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에서 확인했듯 늘어나는 경영권 분쟁, 그리고 그 분쟁이 지난하게 흘러갈수록 로펌업계는 일감이 늘어난다.
함박웃음을 짓는 로펌업계와는 달리 기업들의 매각 또는 인수 자문을 주로 맡는 투자은행(IB) 사이에선 '진정성' 있는 멘데이트(권한)가 몇 개 없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IB업계 한 관계자(D)는 "IB 한 곳 당 적게는 수 십개, 많게는 수 백개의 자문계약을 맺고 있다"면서도 "잘 될 법한 거래들만 대중에 알려지긴 했는데 사실 실제 거래로 이어질 건 몇 개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외국계 IB 한 관계자(E) 역시 "시장에 뜬구름 잡는 식의 거래가 많은 건 사실이다"며 "조 단위 거래가 몇몇 있기는 하지만 밸류에 대한 부담이란 얘기가 항상 따라오고, 실제 원매자 또한 몇 곳으로 제한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M&A 시장의 현주소를 냉정하게 따져봤을 때 원매자(SI)로 나설 수 있는 대기업은 손에 꼽는다. 매도자는 대기업, 인수자는 사모펀드란 구도가 점점 고착화하고 있는 모양새다. IB들은 맨데이트를 잔뜩 쥐고 원매자인 PE를 찾아다니고 있지만, PE 입장에서도 매도자 측이 진짜 매각을 추진하는지 의중을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국내 PEF 운용사 한 대표급 관계자(E)는 "최근엔 매도자 측(대기업 또는 IB)에서 찾아와 먼저 아이디어를 내보란식의 제안이 많다"며 "대기업들의 알짜 사업을 선뜻 내놓지도 않을뿐더러, 우리가 먼저 제안을 한들 성사할 가능성도 적기 때문에 진지한 협상테이블이 만들어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고 말했다.
다른 대형 PEF 운용사 대표급 관계자(F)는 "최근 대기업의 M&A 거래들을 보면 한마디로 '얄미운' 거래들이 대부분이다"며 "구체화한 것 하나도 없이 와서 입맛에 맞게 제안해 보란식의 거래가 많은데, 드라이파우더를 소진해야하는 PEF들이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문제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국내 IB업계 한 대표급 관계자(G)는 "앞으로 대형PE들이 대기업 카브아웃 거래에 (열심히) 참여하려고 할까?"라며 "대형 GP들 가운데선 골치아픈 포트폴리오가 한 두개가 아닌데, 점점 겁나서 받아주기 힘든 시기에 돌입하고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