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돈 받으려면 이젠 마곡으로?…원그로브 기웃거려야 하는 기업·운용사들
입력 2025.02.19 07:13
    취재노트
    글로벌 운용사들 잇단 입주에 임대율 40% 돌파
    태영건설 워크아웃 우여곡절 끝에 담보대출 완료
    연금 3조 투자한 핵심자산…투자실은 '예의주시'
    전주 대신 마곡행 선택한 글로벌 운용사들 속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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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연초부터 서울 마곡지구 원그로브(CP4)에 대한 업계의 시선이 뜨겁다. 준공 이후 공실 해소에 대한 우려가 컸지만, 최근 DL이앤씨를 비롯한 대기업들의 입주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국민연금과 관계를 맺으려는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의 행보다. 과거 전주에 연락사무소를 내던 이들이 이제는 마곡으로 향하는 분위기다. 

      "국민연금 돈을 받으려면 마곡으로 가야 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온다." (한 글로벌 운용사 서울사무소장)

      실제로 하인즈, 스타우드캐피탈, 피닉스프라퍼티인베스터스, 그레이스타 등 글로벌 운용사들이 마곡 원그로브 입주를 확정했거나 검토 중이다. 하인즈는 2010년부터 국민연금의 부동산 자산을 위탁 운용하고 있고, 스타우드캐피탈은 최근 코람코자산운용과 4000억원 규모의 물류부동산 블라인드펀드를 조성하는 등 국내 시장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다.

      글로벌 운용사들의 이런 움직임은 의미심장하다. 과거 이들 중 일부는 국민연금과의 관계 강화를 위해 전주에 연락사무소를 설립했지만, 최근에는 마곡을 새로운 거점으로 주목하고 있다.

      원그로브의 현재 임대율은 40% 수준이다. DL이앤씨가 대형 임차인으로 나서며 돌파구를 마련했다. 여기에 플래그원, 인비트로스 등 LG그룹 계열사들과 에어인천, 사람인 등이 입주를 확정지었다. 다만 이들 대부분이 대규모 임차 수요는 아니어서,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평가다.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전용률을 감안한 마곡원그로브의 실질 임대료는 평(3.3㎡)당 월 20만원 이하로 책정됐다. 도심 프라임급 오피스 임대료의 절반 수준이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실률 해소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임대 자문사만 7곳을 선정했고, 개별 부동산 중개업체(브로커)들도 임차인 유치에 나섰다.

      특히 안준상 국민연금 부동산투자실장 취임 이후 원그로브 임대차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다. 안 실장은 취임 후 잦은 현장 방문과 미팅을 통해 임차인 유치에 힘을 쏟고 있다. 이는 국민연금이 감당하고 있는 막대한 투자 위험과 무관하지 않다.

      국민연금은 2021년 이지스자산운용이 설정한 '이지스전문투자형사모부동산펀드416호'를 통해 원그로브를 2조3000억원에 선매입하기로 계약했다. 당시 3500억원의 계약금을 지불했고, 에쿼티 투자금으로 8000억원을 투입했다. 여기에 준공 후 담보대출 1조9000억원까지 더해 총 2조7000억원의 자금을 마련했다. 이는 매입가보다 4000억원이나 많은 금액이다.

      지난달에는 1조9000억원 규모의 담보대출 전환도 완료됐다. 신한은행이 6600억원으로 최대 규모를 차지했고, 농협중앙회 2700억원, 교보생명·현대해상·DB손해보험이 각각 1800억원을 제공했다. 대출 만기는 45개월, 금리는 4.8% 수준이다. 

      이처럼 국민연금은 원그로브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했고, 이는 부동산 포트폴리오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공실률이 60%에 달하는 상황에서도 담보대출 모집에 3조원에 가까운 금융사 자금이 몰린 것은 국민연금이라는 든든한 백그라운드가 있었던 영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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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원그로브는 그간 우여곡절이 많았다. 시공사인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사태로 공사가 중단되는 위기를 겪었고, 4000억원 규모의 추가 자금 조달도 필요했다. 이 과정에서도 국민연금은 투자를 철회하지 않고 프로젝트를 지원했다. 이미 후순위 투자로 선매입 계약금 수천억원을 납입한 후였기 때문에, 계약을 파기할 경우 손실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이런 상황에서 글로벌 운용사들의 입주는 새로운 전기가 될 전망이다. 과거 국민연금과의 네트워킹을 위해 전주에 사무실을 두던 관행이 이제는 마곡으로 옮겨가는 모습이다. 

      최근 국민연금이 대체투자를 대폭 확대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러한 움직임을 가속화하는 요인이다. 국민연금은 올해 부동산플랫폼투자팀을 신설하고 글로벌 운용사 지분인수(GP Stake) 등 비전통 영역으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한 부동산 운용사 관계자는 "전주 사무소는 상징적 의미가 컸다면, 마곡은 실질적인 비즈니스가 이뤄지는 공간이 될 것"이라며 "국민연금 출자를 받으려면 서울 사무소가 필수 조건인데, 그럴 바에야 연금이 투자한 마곡으로 가서 눈도장을 확실히 찍겠다는 계산"이라고 설명했다.

      더욱이 정부의 국민연금 개혁안에 따르면 기금 운용 규모가 2063년까지 5000조원까지 불어날 전망이다. 대체투자 비중도 현행 15%에서 크게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원그로브는 단순한 오피스 빌딩을 넘어, 글로벌 운용사들의 전략적 거점이 되어가는 모습이다. 

      다만 여전히 높은 공실률은 과제로 남아있다. 연면적 46만㎡(약 14만평)에 달하는 대형 오피스의 특성상, 10% 이상을 채워줄 대형 임차인 확보가 시급하다. 현재 입주가 확정된 글로벌 운용사들의 임차 면적은 대부분 165㎡(50평) 안팎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원그로브는 국민연금이 감내하고 있는 위험만큼이나 상징성도 크다"며 "임대차 시장이 안정화되면 실질적인 수익률 제고도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