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계엄 사태 후 PIC 가격 인하 요구하며 난항
실적 부진 속 고민 일거에 해소할 카드도 안갯속
국내외 신용등급 하락 시 LG엔솔 사업까지 여파
필러·팜한농 등 매각 거론되지만 효과는 미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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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화학은 석유화학과 이차전지 부문이 모두 부진하며 고전하고 있다. 이에 작년부터 중동 자금과 손잡아 석유화학 사업 부담을 줄이면서 이차전지 투자금도 확보하려 했지만 계엄사태 이후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 핵심 재무개선 카드가 사라질 경우 신용등급 하향 압박은 커지고 주력 사업의 경영 환경도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7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LG화학과 쿠웨이트 국영 석유회사 KPC(Kuwait Petroleum Company)의 자회사 PIC(Petrochemical Industries Company) 간의 석유화학 합작법인(JV) 설립 논의는 잠정 중단된 상황이다. 작년 하반기 들어 양측이 계약서 준비로 분주하게 움직였지만 연말 계엄 사태 이후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다.
LG화학은 석유화학 산업이 하향 주기에 든 수년 전부터 해당 사업 비중을 줄이기 위한 검토를 이어갔다. 유럽과 중동의 여러 기업과 접촉한 끝에 쿠웨이트 PIC와 손을 잡았다. 여수 NCC(납사분해시설) 2공장 등 석유화학 자산을 담은 합작사(JV)를 세우고, 그 회사 지분 절반 가량을 PIC에 넘기기로 했다.
여러 고민을 덜 수 있는 LG화학이나 석유화학 포트폴리오 확장을 바라는 PIC 모두 윈윈한 거래란 평이 따랐다. 두 회사는 작년 초부터 협상을 본격화했는데 진척 속도는 더뎠다. PIC가 꼼꼼하게 득실을 따지는 타입이라 LG화학이 협상하는 데 고전했다. 2020년 설립한 SKC와 PIC의 합작사(SK피아이씨글로벌)도 2년간 협의를 거친 것으로 알려졌다.
LG화학은 작년 말 PIC로부터 투자의향서(LOI)를 받았다. 머잖아 본계약을 체결하나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계엄 사태가 터졌다. PIC에서는 한국 정세의 불안정성을 지적하며 이를 가격에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세 불안이 경기 부진과 실적 저하로 이어질 수 있으니 합작사 가치를 낮춰야 한다는 것인데 LG화학은 이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한 IB 관계자는 "PIC는 자금력이 많지만 투자를 서두르지 않고 최대한 깐깐하게 조건을 살피는 타입이라 협상이 쉽지 않다"며 "LG화학과 JV 설립도 PIC가 한국의 대외 신인도를 문제 삼으면서 멈춰 섰다"고 말했다. 다른 거래 관계자는 "작년 가을까지 거래 조건을 조율하기 위한 협상이 분주했지만 올해 들어선 서로 의견이 오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LG화학 측은 "PIC와 다양한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있지만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LG화학이 이런 상황을 타개하려면 결국 한국의 정치 환경이 빨리 안정화 되어야 하는데 언제 결론이 날지 불투명하다. 계엄 사태와 탄핵 결의 직후에는 조기 대통령 선거 가능성이 거론됐지만 탄핵 심판이 장기화할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앞으로 수개월 간 LG화학과 PIC의 입장이 평행선을 그릴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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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한 쪽은 LG화학이다. 석유화학은 반등 가능성이 크지 않고, 이차전지는 캐즘(전기차 일시적 수요 정체) 해소 조짐이 보이지 않는데 대규모 투자 부담은 계속 안고 가야 한다. 이런 상황은 LG화학의 신용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미 작년에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등급을 떨어뜨렸고, 연초 나이스신용평가도 등급 전망을 조정(안정적→부정적)했다.
연간 실적 결산이 끝나면 상반기 중 국내외 신용평가사의 정기 평가가 진행되는데 현재로선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신용도 평가에선 '실적'이 가장 중요한데 LG화학은 작년 연결 기준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각각 11.5%, 63.8% 줄었다. 석유화학 부문은 연간 영업손실을 냈고, 자회사 LG에너지솔루션도 4분기 적자를 기록했다.
당장 실적 개선이 어렵다면 재무구조를 개선했거나 개선할 계획이 있어야 한다. 석유화학 부담을 줄이고 투자금을 확보할 가장 효율적인 카드인 PIC와 JV 설립은 불투명하다. 국내외 신용평가사들이 이를 부정적으로 본다면 추가적인 등급 조정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LG화학이 신용등급을 유지하지 못하면 대외 신인도 하락과 조달비용, 이자비용 증가는 피하기 어렵다. 해외 사업 비중이 높은 자회사 LG에너지솔루션도 그 영향을 고스란히 받게 된다. 이차전지에 대한 국내 투자 심리가 위축된 상황에선 투자금 상당 부분을 해외에서 조달해야 하는데 신용도가 악화하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LG화학과 PIC의 JV 설립이 진행되려면 국내 정세가 안정화해야 하지만 당분간은 협상을 재개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LG화학이나 LG에너지솔루션 입장에선 신용등급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데 핵심 재무개선 카드가 사라진 꼴"이라고 말했다.
이에 LG화학도 JV 설립 외에도 다양한 재무개선 계획을 모색하고 있다. 작년 물밑에서 추진했다가 멈췄던 에스테틱 사업(필러 사업) 매각을 최근 재개했다. 팜한농 등의 매각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런 작업들은 성사되기 어렵거나 재무개선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한 신용평가 업계 관계자는 "LG화학의 신용등급과 관련해 PIC와 JV 진행 상황을 살펴보고 있다"며 "이 외에 필러 사업이나 팜한농 등 다양한 사업부 매각을 검토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재무안정성이 개선된다면 LG화학의 등급이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