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한 '일산대교 트라우마'…국내 인프라 딜 외면하는 투자자들
입력 2025.02.18 07:00
    취재노트
    NPS 투자한 일산대교, 경기도가 일방적 계약 파기
    소송 끝에 승소했지만…여전히 끊이지않는 '잡음'
    NPS도 당했는데…국내 인프라 투자 소극적일 수밖에
    "차라리 해외가 맘 편해"…정부가 신뢰 회복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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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내 인프라 딜은 단순히 수익성만 따질 수 없습니다. 오히려 가장 큰 변수는 정권 교체에 따른 계약 변경과 같은 '정치 리스크'입니다. 차라리 인프라 투자는 해외에서 하는 게 마음 편합니다" (한 은행권 관계자)

      한 시중은행 인프라금융부서는 지난해 국내에서 단 한 건의 신규 인프라 딜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딜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투자심의위원회(투심위)를 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그 사이 국내 인프라 딜은 외국계 운용사들의 독차지가 됐다.

      도로와 항만, 철도 등 인프라 투자는 그 특성상 사업규모만 수조원에 달하고, 기간도 수십년에 달한다. 이 때문에 정부의 지원이 불가피한 분야다. 정부가 최저수익을 보장해주거나, 일정 부분 이상의 손실을 분담해주는 식이다. 민간에서는 정부를 믿고 투자를 하는 셈이다.

      정부에 대한 투자자들의 믿음을 저버린 대표적인 사건이 일산대교를 둘러싼 국민연금과 경기도 사이의 갈등이다. 일산대교는 민자 개발이 이뤄진 유일한 한강 교량으로, 지난 2009년 국민연금이 5개의 민자 사업자인 건설사들로부터 지분 100%를 사들였다. 국민연금의 국내 인프라 포트폴리오 중 하나다.

      국민연금은 당시 일산대교 운영사인 일산대교㈜의 지분을 인수하며 선·후순위 대출을 포함해 2661억원을 투자했다. 투자금은 자체 조달했고, 금리는 선순위 8%에 후순위 6~20%로 책정됐다. 통상 민간 인프라 사업의 경우 상법상 배당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후순위채의 원리금 상환방식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한다. 경기도 역시 이와 같은 자금조달계획을 승인했다.

      그럼에도 불구,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는 지난 2021년 돌연 통행료가 지나치게 비싸다는 이유로 통행료를 무료화하는 공익처분을 내렸다. 국민연금측은 즉각 반발해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2024년 10월 대법원까지 가서야 법원이 국민연금의 손을 들어주며 마무리됐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야당 주도로 일산대교 통행료 문제 해결을 위한 법안이 발의되는 등,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란 평가다.

      국내 기관투자자들은 지금까지도 '일산대교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지자체를 믿고 진행한 투자를 지자체가 스스로 번복하며 불확실성을 키웠다. 국내 최대 '큰손'으로 꼽히는 국민연금마저 '배신'(?) 당한 상황에서, 그보다 힘이 약한 연기금·공제회 등 기관투자자들은 국내 인프라 딜에 '선입견'을 가질 수 밖에 없게 됐다는 평가다.

      지난해 철도와 공항 등 국내 인프라 투자제안을 요청받았던 한 연기금 최고투자책임자(CIO)는 "국내 인프라 투자를 제안받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일산대교"라며 "지금 눈 앞의 조건과 무관하게 향후 불확실성이 큰 만큼 웬만큼 좋은 수익률이 아니면 검토하지 않고, 제안을 받았던 건들도 모두 고사했다"라고 말했다.

      최근 정부는 민간투자사업의 원활한 자금조달을 위해 은행의 BTO(수익형 민간투자) 투자시 위험가중치를 기존 400%에서 250%로 하향했다. 건전성 관리를 위해 RWA(위험가중자산) 통제에 나선 은행들을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물론 위험가중치 하향이 투자 여력 확대에 일견 도움은 되겠지만, 업계에서는 그보다 중요한 것은 '신뢰 회복'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국내 인프라 딜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위험가중치가 아니라 '정부'라는 확실한 '리더'의 부재"라며 "정부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려는 모습을 보이면, 자연스럽게 투자자들도 모일텐데 그런 것 없이 민간에 모든 것을 맡겨 버리니 조달이 잘 되지 않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지난해 국내 인프라 시장에서 가장 큰 규모의 딜로 꼽히던 GTX-C는 3월 착공식을 가졌지만, 조달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으며 아직 첫 삽도 뜨지 못하고 있다. 금융주선기관인 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이 현재 국내 모든 기관들과 접촉해 조달을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뒷짐'만 진 정부도 조달 난항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평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 투자자들은 해외로 눈을 돌린다. 해외도 일부 신흥국들을 제외하고는 국내와 마찬가지로 인프라 투자에 있어 MRG(최소수익보장) 제도는 폐지되고 위험분담형 구조가 일반적이지만, 적어도 국내처럼 정부 혹은 지자체의 일방적인 계약 파기 혹은 변경은 없다는 설명이다.

      최근 서원주 국민연금 CIO는 부동산과 인프라 투자처를 발굴하기 위해 호주로 해외출장을 다녀왔다. 물론 면적이 남한보다 77배 넓은 호주가 국내보다 인프라 등 투자처가 많은 측면도 있겠지만, 국내 기관들이 갈수록 국내 투자에 소극적이고 해외로 눈을 돌리는 이유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