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과 판박이…시장 피로도만 누적
은행권 반발에…공정위 '무리수' 지적
다만 공정위도 결국 '관치 금융' 피해자
달라진 尹 입지에…큰 성과내기 힘들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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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를 2년 전으로 되돌려보자. 2023년 2월 27일,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 카르텔조사국은 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IBK기업은행 등 6개 은행에 대한 현장 조사에 착수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금융사의 과도한 지대추구를 막을 방안을 강구하라"고 주문한지 나흘 만의 일이었다. 당시 공정위는 은행들의 대출금리와 수수료 등 담합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조사라고 밝혔다.
시계를 1년 전으로 되돌려보자. 2024년 1월 8일, 공정위는 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에 담합 행위와 관련해 검찰의 공소장 격인 심사보고서를 발송했다. 심사보고서에는 4대 시중은행이 개인과 기업을 상대로 담보대출 업무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거래조건에 해당하는 담보인정비율(LTV)을 사전에 공유해 부당한 이득을 취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보자. 공정위는 지난 10일부터 4대 은행의 LTV 정보교환 담합 사건 재조사에 착수했다. 지난해 11월 공정위 전원회의에서 재심사 결정이 내려진 탓이다. 현재 4~5명 정도의 공정위 조사관들이 우리·신한은행에 각각 상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조만간 국민은행과 하나은행에 대한 현장조사가 이뤄질 것으로 알려졌다.
2년 전과 1년 전, 그리고 현재를 놓고 비교해보면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연초마다 반복되는 공정위의 은행 조사 소식에 시장 관계자들의 피로도만 쌓이고 있다. '원점에서 재조사'라는 결론이 나면서, 결국 2년간 공정위의 조사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이미 한 번 조사를 해서 재조사는 더 속도가 날 거란 '변명'은 멈춰 선 2년의 시간을 해명하기 어렵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자연스럽게 공정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공정위가 무리한 조사를 반복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공정위는 당초 조사에 착수할 당시 제기했던 대출금리와 수수료 담합 의혹을 제외했다. LTV에 대한 '정보교환 담합'만을 물고 늘어지고 있는데, 이는 제재 전례가 없을 뿐더러 소비자 피해로 이어졌는지를 입증하기도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한 시중은행 지점 프라이빗뱅커(PB)는 "'LTV 정보 담합'이라고 하니 뭔가 대단한 비밀이 있는 것 같지만, 오히려 소비자들이 먼저 대출을 받으러 올 때 다른 은행들의 LTV를 알아본 뒤 비교해서 알려주는 경우가 흔할 정도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정보"라며 "공정위의 지적대로 은행이 LTV를 담합한 것이 사실이라고 가정하더라도, 은행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제한적이다"라고 말했다.
공정위 전원회의에서 재심사 결정이 난 것도, 공정위가 무리하게 조사를 진행했다는 목소리에 힘을 싣는다.
지난해 11월 두 차례나 전원회의가 진행됐지만, 결국 위원(법원의 판사격)들은 '심사관과 피심인들의 주장과 관려한 사실관계를 추가 확인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결국 공정위의 1차 심사보고서(검찰의 공소장 격)가 은행권의 담합 혐의를 충분히 소명하기에 부족했다는 셈이다.
처음부터 이번 조사는 윤 대통령의 엄포에서 시작된 만큼, 정치적인 목적성이 짙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당초 공정위는 2023년 업무 추진계획에서 은행에 대한 조사 방침을 별도로 세우지 않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지시로 나흘 만에 직권조사가 이뤄졌다. 공정위 입장에서도 충분한 준비없이 '반드시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 할' 조사에 착수했던 만큼, 지금의 비판이 다소 억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결국 은행권과 공정위 모두 '관치 금융'의 피해자인 셈이다.
앞서 지난 2년 전과 현재 공정위의 조사가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고 했지만, 중차대한 환경의 변화는 있다. 바로 윤 대통령의 거취다. 처음 조사는 취임 2년 차를 맞은, 대통령의 목소리에 한창 힘이 실리는 시기에 시작됐다면, 지금은 탄핵의 위기에 놓여 있는 상황이다. 조사의 시작점이 됐던 동력 자체가 사실상 상실된 만큼, 이번 재조사의 결론도 큰 성과를 내기 힘들 것이라는 게 시장의 관측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2년 전 공정위에서 조사를 처음 시작했을 때와 재조사를 나온 지금, 달라진 것은 윤 대통령의 거취 뿐"이라며 "결국 조사 결과가 나오는 데 까지는 1년 가까운 시간이 또 걸릴 텐데, 결과와 무관하게 은행권에 불안과 불확실성을 키웠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