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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범 회장과 MBK파트너스·영풍 연합이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고려아연은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된 상태다. 현재 한국거래소가 고려아연에 부과한 벌점의 누계는 총 9.5점. 10점이 넘으면 1 거래일간 매매거래가 정지되고, 누계 기준 15점이 넘으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된다.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이후에도 벌점이 쌓이게 되면 한국거래소는 상장적격성 심사를 통해 상장 유지여부를 결정한다.
고려아연이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된 사유는 ▲유상증자 결정(2024년 10월 30일)과 철회(11월 13일)로 인한 벌점 6.5점(제재금 6500만원) ▲경영권 분쟁 소송(9월19일) 관련 지연공시(11월 7일) 벌점 1점▲금전대여결정(5월 3일) 관련 지연공시(12월 18일) 벌점 1점 ▲채무보증 결정(10월17일) 이후 정정사실 발생에 대한 지연공시(12월18일) 벌점 1점 등이 쌓이게 되면서다.
사실 상장회사들 가운데선 이 짧은 기간 동안 벌점이 쌓인 경우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차 전지기업 '금양' 정도가 비교적 큰 벌점을 받아 하루 간 거래정지가 된 사례가 회자되는 정도다. 공시의 번복 또는 단순 실수로 벌점을 부과받는 경우는 종종 찾아볼 수 있으나, 차곡차곡 벌점을 쌓아 거래정지 위기에 놓인 코스피 상장사는 그리 많지 않다. 코스피 상장사들은 주주와의 소통, 내부통제 시스템이 그나마 잘 작동하고 있단 방증이기도 하다.
경영권 분쟁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 전 투자자들에게 고려아연은 비교적 탄탄한 기업으로 여겨져왔다. 연간 수천억원의 현금을 벌어들이고, 사업적으로나 재무적으로나 오랜 기간 무탈한 기업 중 하나였다.
이번 분쟁을 겪으며 고려아연은 상장회사로서 부실한 내부 시스템이 여실히 드러나게 됐다.
그동안 회사가 안정적으로 굴러왔기 때문에 재무부서나 IR부서 모두 경영권 분쟁이란 소용돌이 속에서 적잖이 혼란스러웠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껏 한국거래소에 불려갈 일도, 굳이 적극적으로 상대할 이유도 없었다. 지난해부턴 언제 주인이 바뀔지 모르고 또 하루가 멀다하고 소송과 재무적 이슈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시의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던 점도 일견 이해가 간다.
한국거래소 상장공시심사위원회에 회부됐을 당시, 실무진들은 상당히 진땀을 뺀 것으로 전해진다. 심사위원회 한 참석자는 실무진들을 향해 "짠했다"는 표현까지 했다. 이런 상황을 겪어보지도, 대응할 준비도 안돼있었기 때문에 세련되게(?) 상대할 수 있는 인력도 없고 방법도 몰랐단 평가도 나왔다.
벌점이 조금만 더 쌓이면 거래가 정지되고, 또 상장 유지 여부를 가려야하는 상황. 재무부서 등 실무진들은 내부적으로 초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은 장기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임시주주총회는 최윤범 회장의 '일단' 승리로 끝났고, MBK·영풍이 법원에 제기한 가처분에 대한 심리는 이달 중순부터 열린다. 공정위 제소, 검찰 고발 건까지 양측의 법적 갈등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경영권의 향방을 가늠할 수 없는 어수선한 내부 상황의 피해는 투자자들의 몫이 될 수 있다. 아직 상장폐지를 예단하긴 이르지만, 일부 기관투자자들은 상장 존속여부에 대한 불확실성을 슬슬 거론하기 시작했다.
투자자들이 고려아연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된 이차전지 전구체 원천기술을 보유한 우량기업이 아닌, 분쟁에 휘말려 언제든 상장폐지 될 수 있는 불확실성이 큰 기업으로 여기는 것은 장기적인 기업가치 제고 측면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입력 2025.02.13 07:00
취재노트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5년 02월 09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