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의 역설…K콘텐츠 고점 판독기 된 넷플릭스
입력 2025.02.04 07:00
    취재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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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넷플릭스가 K-콘텐츠를 구축한다”

      악화(惡貨)는 양화(良貨)를 구축한다(Bad money drives out good)는 걸 빗댄 표현이다. 물론 넷플릭스가 악화는 아니지만, 넷플릭스가 한국의 콘텐츠 프로바이더들을 밀어내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오징어게임 시즌2에 혹평이 이어지고 있지만(시즌3까진 보고 나서 판단하자는 말도 있지만 말이다) 전체 순위에서 3주 연속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며 초반 기대감과 화제성만큼은 최고였다.

      반면 제작비 150억원이 들어간 영화 ‘보고타’는 흥행에 참패했다. 손익분기점이 300만명이었는데 관객수는 40만명을 겨우 넘은 상태다. 이에 주연 배우였던 송중기가 눈물을 흘렸고 이 장면이 영화보다 더 화제가 됐다. 송중기의 눈물이 지금 한국 콘텐츠 시장의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넷플릭스가 주춤할 것처럼 보였다. 글로벌 시장에선 애플과 아마존, 디즈니플러스가 국내 시장에선 웨이브, 티빙, 쿠팡플레이 등 OTT들의 난립으로 넷플릭스의 존재감도 예전같지 않을거라고 봤다. 실제로 위기감이 들었는지 넷플릭스는 광고가 포함된 월 5900원 요금제 카드를 꺼냈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명불허전 넷플릭스였다. 넷플릭스는 지난해 4분기에 102억4700만달러, 우리돈으로 약 14조7249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16% 오른 수준이다. 영업이익은 22억7300만달러(약 3조2663억원)을 기록, 같은 기간 52% 상승했다.

      월스트리트는 넷플릭스가 2억9090만명을 추가로 유입했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실제로는 이를 크게 웃돌았다. 호실적 이유로 역시나 오징어게임을 꼽았다. 넷플릭스는 이런 기조가 올해에도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오징어게임 시즌3가 대기중이기 때문이다.

      로컬 콘텐츠 메이커는 넷플릭스에 구애하고 넷플릭스는 다시 로컬 콘텐츠 메이커를 키우는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분위기다. 이미 구축됐을지도 모른다. 콘텐츠 메이커들은 몇분짜리로 만들지, 시리즈는 몇편으로 할지 등등 넷플릭스가 원하는 입맛에 맞춰 만들어야만 한다.

      콘텐츠 투자자들은 한목소리로 얘기한다. 이제 한국에서 대중 영화는 그 수명을 다 한 것 같다고. 이미 대중은 한 편당 40분 정도, 6~7개 정도의 시리즈 스타일에 익숙해졌다. 호흡이 2시간이 넘고 한 편 안에 모든 얘기를 담아야 하는 영화는 더 이상 대중들에게 어필을 하지 못한다. 16부작 미니시리즈도 길게 느껴질 정도다. 시나리오를 쓰는 사람도, 작화를 하는 이들도 넷플릭스 시스템에 맞추고 있다. “한국에선 봉준호, 박찬욱 정도 돼야 자기 의도대로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할 정도다.

      한국의 콘텐츠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바로미터다. 한 때 주당 9만원을 넘보던 CJ CGV의 주가는 5000원대에서서 굳어버렸다. 30만원 근처까지 갔던 CJ ENM은 5만원대로 떨어졌고 스튜디오드래곤은 8년전 12만원대에서 현재 3만원대로 떨어졌다. 2만원도 찍어봤던 NEW의 주가는 지금 2000원대다.

      이젠 SBS와 넷플릭스, MBC와 디즈니처럼 콧대높던 지상파 방송사들도 글로벌 OTT와 맞손을 잡아야 반짝 호재가 생길 정도다. 세상이 이렇게 바뀌었는데도 영화 투자배급과 제작 환경은 달라진 게 없다. 배우들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스태프 인건비도 오르고는 있지만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절대적 불합리함이 드러나고 있다. 넷플릭스조차 한국 배우들의 높은 몸값에 부담을 느껴 일본으로 눈을 돌린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들린다. 일본에선 한국의 절반값이면 충분히 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니 글로벌OTT가 투자하지 않는 K-콘텐츠에 투자하는 건 호구라는 말이 나온다. 넷플릭스가 본의(?)아니게 한국 콘텐츠 시장이 고점을 지났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오징어게임이 흥행을 할수록 국내 콘텐츠 시장의 빈익빈부익부는 고착화하고 넷플릭스의 투자를 받지 못하는 콘텐츠들의 흥행 가능성은 더 낮아지는 고리에 빠진다.

      여러 산업에서 한국 기업들은 고점을 찍었고 새로운 출구를 제대로 찾지 못하는 상황이다. 콘텐츠 시장에서도 같은 장면을 봐야 하는 게 씁쓸하다. 규모의 경제에서 밀리는 건 어쩔 수 없다. 다만 한 때 물이 들어올 때 제대로 노 저을 생각 없이 타성에 젖어 흥청망청 돈을 뿌리던 콘텐츠 업계가 지금의 업보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오징어게임이 잘 될수록 K콘텐츠에 질 그늘이 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