쿼터 논의 시작도 전부터 포스코·현대제철 수출길 좁아지는 中
멕시코 우회도 현지 M&A도 안 되면 결국 현지 직접 진출해야
포스코퓨처엠 유동성 우려 본격화하는데 모태 철강도 고심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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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하며 철강 산업을 둘러싼 관세 장벽이 다락같이 높아지고 있다. 물건을 사주는 쪽이 수입할당제(쿼터)에 관세, 탄소세까지 줄줄이 협상 카드를 꺼내든 형국이라 팔아야 하는 국내 철강업계의 고심이 깊어진다. 가장 먼저 선물 보따리를 푼 현대제철과 마찬가지로 포스코 역시 우회 방안을 마련해야 할 거란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취임 일성으로 내달 1일부터 멕시코와 캐나다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틀 차인 21일엔 2월부터 중국에 10% 추가 관세를 물리는 것도 논의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현실화 여부를 두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나 트럼프 2기 미국이 자국 소비자에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전방위 관세 카드를 휘두를 거란 관측이 맞아들어가고 있다.
앞서 미국 재무장관으로 내정된 스콧 베센트 지명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공약한 관세 정책에 탄소세를 포함할 수 있다고도 했다. 시장은 3년 전 미국 민주당이 발의한 청정경제법(CCA)에 주목하고 있다. 유럽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보다 광범위하고 강력한데, 무엇보다 공화당 역시 지지하는 법안으로 통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직후 기후협약에서 탈퇴했던 만큼 친환경 정책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탄소세 역시 뒤집어 보면 관세인 탓에 도입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국내 철강 산업에는 우울한 소식들이다. 쿼터제 논의 시작도 전부터 수출길이 좁아지고 있다.
포스코는 멕시코 현지에 차량용 강판(CGL) 공장을, 현대제철은 가공센터(SSC)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인접한 멕시코를 경유해 미국 시장에 수출해온 건데 25% 관세가 부과되면 타격이 불가피하다. 인건비가 싸고 세계 최대 자동차 소비시장인 미국과 가깝다는 수출 거점으로서의 매력이 관세 카드 한방에 뚝 떨어지는 셈이다.
탄소세는 계산이 더 복잡하다. CCA는 처음 도입 땐 철강, 석유화학 등 12개 원자재 품목에 탄소세를 부과하지만 대상이 단계적으로 확대된다. 자동차나 전자제품에도 탄소세를 물릴 수 있다는 얘기다. 국내 강판 시장의 최대 고객사인 현대자동차그룹의 완성차 수출까지 연쇄적으로 덫에 걸려드는 구조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벌써 가전제품 등 생산기지를 미국 땅으로 옮기는 작업에 착수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국 철강 산업의 부흥을 내세워 쿼터제까지 재차 손보려 할 경우 국내 철강사가 미국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는 더 어려워진다. 그는 취임 이전에도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 시도에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내며 핏대를 높여왔다. 당초 지난 2017년 무역확장법 232조를 들어 철강 수입에 쿼터제를 도입한 당사자가 1기 시절 트럼프 대통령이었다.
미국 시장을 공략하자면 결국 현지에 새로 공장을 짓는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제철은 이미 작년부터 미국 현지에 전기로를 짓는 방안을 검토해온 것으로 확인된다. 원래도 자체 탄소감축 계획에 따라 점진적으로 수소환원제철 전기로와 같은 친환경 공정으로 나아간다는 전략을 구상해왔다. 고로 중심의 전통적인 일관제철 공정에 비해 탄소배출량을 90%까지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대규모 양산에 성공한 사례가 없고, 고로에 비해 많은 전력 에너지를 확보해야 하는 등 문제에도 트럼프 대통령 취임에 맞춰 현지 직접 진출 계획을 서둘러 추진하는 상황으로 풀이된다.
현대제철의 미국 진출은 현대차그룹의 중장기 미국 시장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는 평이다. 현대차그룹이 미국 내 완성차 판매물량의 60%를 국내에서 생산하고 있는 만큼 탄소세 범위가 넓어지기 전 현지에서 자체적인 공급망(SCM)을 구축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대제철이 현지에서 친환경 공정으로 강판을 공급할 수 있다면 현대차와 기아 모두 훨씬 유연한 생산·판매 전략을 구상할 수 있다.
포스코 역시 수소환원제철 전기로 캐파(capa, 생산설비) 확충과 미국 현지 상공정 진출 계획을 검토하고 있었던 만큼 비슷한 수순을 밟을 거라는 분석이 많다. 포스코 매출의 절반 이상은 수출에서 발생하는데, 핵심 품목은 결국 자동차에 필요한 냉연강판이다. 최대 시장인 미국은 포기할 수 없는 선택지이나, 관세와 탄소세를 피하지 않으면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 건설을 포함해 내수 경기 전반이 움츠러드는 상황에서 미국이 대(對) 중국 관세를 끌어올리고 있어 어차피 해외 판로 개척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때이기도 하다.
현지 인수합병(M&A)을 통해 단숨에 캐파를 확보하는 방식은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 불허 사태와 마찬가지로 실현 가능성이 낮다. 이 때문에 인도 시장에서처럼 포스코가 현지 업체와 합작법인(JV)을 꾸리는 방식에 무게가 실린다. 그러나 2차전지 계열사인 포스코퓨처엠이 북미 투자를 늘렸다가 현재 재무 부담이 늘어난 터라 그룹에서 어떤 전략을 내놓을지 지켜보는 시선이 많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전임 바이든 행정부 땐 보조금을 받기 위해 미국에 공장을 깔았다면 지금은 관세를 피하려고 공장을 깔아야 하는 상황"이라며 "보조금 때문에 북미에 나갔던 포스코퓨처엠이 유동성이 말라 그룹 지원을 기대해야 하는 상황에 이제 모태인 철강까지 미국에 공장을 지어야 하는 구도"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