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자금조달 계획 아직 못 짠 발행사들
신평사 "체감상 발행사 50% 정도 줄어"
연초효과, 1월 아닌 2~3월 지연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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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새해초 자금 조달을 준비 중인 기업들의 분위기가 이전과는 사뭇 다른 모양새다. 금리인하 불확실성에 '탄핵정국'이라는 정치적 변수까지 겹치며, 기업들이 조달업무 등 신션 사업계획 설정을 미루고 있는 탓이다.
통상 1~2월은 기관투자가들이 자금 집행을 재개함에 따라 회사채 시장에 풍부한 유동성이 공급되는 시기로 발행사 역시 이러한 '연초 효과'를 누리기 위해 연말부터 미리 자금을 준비한다. 다만 예상치 못한 변수가 겹치며 신년 초까진 눈치보기가 이어질 거란 전망이 힘을 받고 있다.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신년 1월 회사채 발행을 확정한 기업은 10여 곳에 그친다. 2024년 1월 50여 곳이 넘는 기업들이 회사채 시장을 찾은 것과 대조적이다. 포스코가 6일 5000억원 모집을 목표로 가장 먼저 수요 예측에 나선다. 이 밖에도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LG화학, 현대제철 등의 발행이 예정되어 있다.
아직 수요예측 일정을 조정 중인 기업들이 있는 점을 고려하면 발행사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지만, 분위기가 예년만 못하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신용평가사들은 12월 가장 분주한 시기를 보낸다. 커버리지 기업들의 정기 신용등급 평가에 더해 1월 회사채 발행이 예정된 기업들의 회사채 신용등급 평가까지 해야하는 탓이다. 다만 지난 12월의 경우는 1월 회사채 신용등급 평가 수요가 크게 줄면서, 예년만큼 바쁘지 않다는 설명이다.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숫자를 비교해보지는 않았지만, 체감상 1월 회사채 발행사들이 50% 가까이 줄어든 것 같다"라며 "그만큼 발행사들의 고민이 크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회사채 발행을 주관하는 증권사들에서도 유사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발행사들은 회사채 발행을 앞두고 시장의 투자심리와 이에 따른 발행시점 등을 주관사들과 조율하는데, 올해는 유독 불안감을 호소하는 발행사들이 늘었다는 설명이다.
한 증권사 커버리지부서 관계자는 "고객사에서 연일 시장 투심이 어떤지, 1월에 발행하는 것이 메리트가 있을지 등을 문의해온다"라며 "다만 주관사 입장에서도 최근 시장 상황이 변수가 워낙 많다 보니, 고객사가 원하는 만큼의 충분한 답변을 줄 수 없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발행사들이 발행을 고심하는 가장 큰 이유는 금리다. 회사채 금리가 고점 대비 하락한 것은 맞지만, 여전히 고금리가 이어지고 있다. 기준금리 자체는 내려갔지만, 시장금리는 그만큼 내려가지 않았단 분석이다.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 인하 속도 조정을 시사한 점도 부담이다.
미 연준은 최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낮췄으나, 매파적 의견을 내놓은 바 있다. 당시 "추가 인하의 시점과 규모를 고려하겠다"고 밝히며, 금리 인하가 시장의 예상보다 늦어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에 발행사들은 1월보다 시장의 상황을 조금 더 지켜본 뒤 2월이나 3월 정도에 본격적으로 발행을 재개하려는 분위기다. 일부는 회사채 차환 물량을 은행 차입 등으로 해결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은행에서 차입하는 것이 불확실성 해소 측면에서 더 나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한 증권사 채권담당 연구원은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하며 불확실성이 일부 해소되었음에도, 크레딧 스프레드(국고채와 회사채간 금리 차이)는 줄어들지 않고 커지고 있다"라며 "크레딧 스프레드 확대로 기업들의 조달 환경이 위축될 우려가 큰 만큼, 신년에는 연초효과가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