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적절한 평가가 안전·위험자산 구분할 수 있게 해
발행사 눈치보는 구조적 한계…등급 쇼핑 관행 여전
"경기 어려울수록 신평사 불신 파급력 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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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최근 신용평가사의 신용등급 평가에 관한 신뢰성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기업의 재무 상황이 악화해도 신평사가 적기에 신용 등급을 조정하지 않으면서 시장의 우려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신평사가 평가한 신용등급을 자본시장이 믿지 않으면, 신뢰로 쌓아 올린 자본시장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
신평사는 발행 기업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국내 기업은 회사채를 발행할 때 최소 두 곳의 신평사에서 신용등급을 받아야 한다. 등급을 잘 주지 않는다는 인식이 자리잡히면 그 신평사는 매출에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기업은 등급을 후하게 주는 신평사를 찾아가는 이른바 '등급 쇼핑'이 가능하다. 신평사의 이런 생리를 잘 아는 발행사는 원하는 등급을 받기 위해 신평사를 압박하는 행태도 여전히 존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고금리 기조가 이어지고 경기 전망은 위축됐다. 경제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시기일수록 신평사의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하다. 정확하고 시의적절한 등급 평가가 이뤄져야 시장은 안전자산과 위험자산을 구분하기에 용이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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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평사의 신뢰도가 떨어진 건 최근 일만은 아니다. 2010년대 LIG건설, 웅진홀딩스, 동양 기업회생절차를 연이어 경험하며, 신용등급 늦게 하향조정한 신평사에 비판이 제기됐다. 지난 2011년 3월 LIG건설은 법정관리에 들어간 뒤에야 신용등급이 떨어졌다. LIG건설은 법정관리 신청 열흘 전까지 기업어음(CP)를 발행했으며, 신평사는 이 CP에 투자 적격인 A3- 등급을 부여했다.
2012년 9월 신평사들은 웅진그룹 계열사 극동건설이 부도를 맞고 지주사 웅진홀딩스가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한 이후에야 웅진그룹에 대한 신용등급을 내렸다.
2013년 9월 '동양그룹 부실 CP 돌려막기 사태' 당시 신평사는 자본잠식 상태인 동양 계열사에도 채무 상환 능력이 인정되는 B등급을 줬다. 동양그룹은 2년9개월 동안 약 1조5000억원의 CP를 돌려막기 했으며. 주요 계열사가 동시에 법정관리를 신청하자 오롯이 투자자의 피해로 돌아왔다.
이후 금융위원회가 2016년 9월 신용평가시장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신평사가 '등급 장사' 등의 불건전 영업행위를 하면 영업정지 수준의 조치가 가능하게 됐다. 그간 신평사가 계약을 따내기 위해 기업 측에 후한 신용등급을 암묵적으로 약속한 뒤 수수료를 지급받거나, 등급 하향조정 시기를 미뤄주는 등의 관행이 있었다.
근래엔 태영건설이 기업 개선 작업(워크아웃)을 겪으며 신평사에 대한 불신이 다시금 커졌다. 작년 12월 태영건설 워크아웃 직전까지도 신평사들은 태영건설의 무보증 회사채 신용등급을 A-로 유지했다. 신평사는 워크아웃 신청 공시가 발표된 이후에야 투기등급인 CCC로 10단계 강등했다.
그럼에도 신평사의 등급 쇼핑 관행은 줄지 않았다는 평가다. 특히, 자산유동화증권 평가에서 빈번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자산유동화 구조가 다소 빈약하더라도 발행사의 요구를 최대한 반영하는 추세로 전해진다.
기업신용 평가도 자산유동화증권과 달리 시장에서 지켜보는 눈이 많아 상대적으로 덜할 뿐, 관행이 유지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신용등급 상향 트리거에 도달하면 등급을 빨리 올리고, 하향 트리거에 도달하면 천천히 내리는 등 속도를 조절한다는 설명이다.
최근 신평사의 '칼날'이 무뎌진 이유로 대기업군에서 부도 업체가 줄어든 점도 꼽힌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2016년 대규모 채권발행 잔고를 보유한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부실화로 부도 금액(부도금액 3개사 1조6000억원)이 많이 증가한 이후 부도업체가 감소했다. 중소기업군에서 주로 부도가 발생하며 부도금액도 축소됐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몇 년 동안 부도난 채권과 자산유동화증권이 적다 보니, 신평사도 등급 쇼핑 관행에 더 무뎌졌다"며 "오랜 기간 금융당국은 신평사를 엄격하게 감독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