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인사 두고 야당 의원과 설전
상법 개정서 자본시장법 개정 선회
금융권 메시지는 결국 '뻔한 이야기'
우리금융·PF 등 눈 앞 과제 해결 우선
-
이미지 크게보기
- (그래픽=윤수민 기자)
임기를 반년 가량 남겨 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대통령 탄핵'이라는 최대 변수를 맞았다. 이 원장은 최초의 검사 출신 금감원장으로, 윤석열 대통령 최측근으로 분류되던 인사다.
탄핵 이후 대통령 '손절'을 공식화하며 독자적인 리더십 구축에 나서고 있지만, 업계의 평가는 이 원장의 기대와는 다소 어긋나는 듯하다. 발언과 행보에 대한 주목도보다 향후 거취에 대한 설(說)만 더욱 무성해지는 모양새다. 임기 말 이 원장의 역량이 본격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18일 국회에서 정무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렸다. 이날 회의는 최근 정치 상황과 관련해 금융 시장을 점검하기 위해 마련된 '현안질의'의 성격으로, 탄핵 이후 이복현 원장이 처음으로 국회에서 발언하는 자리였다. 정치권뿐만 아니라 자본시장 관계자들의 많은 관심이 몰렸다.
하지만 이날 경제 현안보다 더 주목받았던 것은 이 원장과 야당 의원간 '설전'이었다. 최근 금감원이 대규모 인사를 단행한 것과 관련해,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해당 인사 조치가 부적절했다고 지적하자 이 원장이 적절했다며 맞받아치면서다.
금감원은 지난 10일 부서장 보직자 75명 가운데 74명을 교체하며, 사실상 부서장 전원을 물갈이하는 대규모 인사를 단행한 바 있다. 임기가 끝나기 전 마지막 인사는 통상 '혁신'보다는 '안정'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이례적인 인사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금감원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에서도 '탄핵 정국' 혼란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김 의원은 "사기업에서도 이렇게 인사를 하면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는데 몇개월이 걸린다"라며 "탄핵이 가결되기 전에 임기도 얼마 안 남은 사람이 부서장 75명 중 74명을 교체한 것은 대단히 이상하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이 원장은 "해당 업무를 맡은 팀장을 국장으로 올려서 업무의 연속성이 유지된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이 "금감원 내에서 인사에 대해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나오는지 아는가"라고 질책하자 이 원장은 "인사야 어차피 말이 많지 않느냐"고 받아치기도 했다.
김 의원이 "인사 사유에 대해 정확하게 다시 의원실에 보고하라"라고 요구했지만, 아직까지 금감원은 따로 답변을 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해당 설전과 관련해, 정치권에서는 이 원장이 인사의 적절성 여부를 떠나 굳이 이 시기에 국회와 대립각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탄핵 정국 속에서 정책 추진에 있어 국회와 야당의 협조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에, 득이 될 것이 전혀 없다는 설명이다.
한 국회 관계자는 "인사가 원장의 권한인 것을 국회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 단지 세간의 우려가 큰 만큼 이를 이 원장에게 알리고자 하는 통상적인 질문이었는데 이 원장이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한 느낌"이라며 "지금과 같은 시기에 국회와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이 원장 개인으로서도, 금감원으로서도 전혀 득될 것이 없다"라고 말했다.
이날 이 원장은 국내 증권시장에 필요한 것이 상법 개정이라고 주장하다 자본시장법으로 입장을 선회하는 '오락가락'한 발언으로 또 한번 도마 위에 올랐다. 이 원장은 현안질의에서 "야당에서 검토한 상법 개정안의 경우 상장법인 합병 등과 관련 이슈에서 문제점이 촉발된 것들을 생각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 원장은 올해 6월까지만 하더라도 자본시장법보다 상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법 개정안의 골자는 현재 회사로만 한정된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로 넓히는 것으로, 당시 이 원장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로 하는 건)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지 않는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이강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소신 있는 발언을 많이 하다가 근래에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게 아니냐"고 비판했다.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에서도 이 원장의 입장 선회를 두고 '실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여당 관계자는 "상법 개정안은 윤석열 대통령이 운을 띄우고 그동안 이복현 원장이 힘을 실어줬던 것인데, 갑자기 입장을 선회하는 것은 당연히 야당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라며 "이는 상법과 자본시장법 개정 모두에도 도움이 되는 방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원장은 계엄과 탄핵 사태 이후 연일 은행과 증권사, 카드사 등 금융권에 이어 사모펀드(PEF) 운용사까지 소집하며 메시지를 내고 있다. 정치권의 혼란이 금융권까지 집어삼키지 않도록 하기 위해 당국이 바쁘게 움직이는 것은 응당 당연한 일이지만, 문제는 '보여주기'식에 불과하다는 뒷말이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 12일 금감원이 국내 PE 수장들을 불러모은 것을 두고는 벌써부터 업계에 '군기잡기', '맹탕 간담회'라는 뒷말이 나오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나온 말들도 '불확실성에 잘 대비하라'는 당위적인 말들에 그쳤다는 평가가 많다. 상당수 간담회에는 이 원장이 해외 일정 등을 이유로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
이에 이 원장이 당장 눈 앞에 당면한 과제들에만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달 중 발표가 될 것으로 보였던 우리금융 정기검사 결과가 내년으로 연기되면서, 벌써부터 업계에서는 이번 탄핵 정국의 최대 수혜자는 '임종룡 회장'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이복현 원장이 지나치게 많은 이슈들에 개입하고 입장을 내려고 한다"라며 "우리금융 정기검사 결과와 부동산 PF 안정화 대책의 안정적인 정착 등 당장 눈 앞에 놓인 과제들부터 해결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