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값 무색했던 블랙스톤, 늘어난 투자 열의는 한국 오피스 생존 때문?
입력 2024.12.23 07:00
    취재노트
    글로벌 1위 사모투자사지만 한국선 부진
    2014년 철수한 후 조용한 투자행보 보여
    올해 미뤄둔 회수 나서고 투자도 본격화
    가만히 있어서는 조직 유지할 명분 없어
    탄핵정국서도 적극적으로 투자 나설 듯
    •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글로벌 사모투자 시장에서 블랙스톤의 위상은 절대적이다. 창업자인 스티븐 슈워츠먼 회장은 '사모펀드의 제왕'이라 불린다. 유수의 사모투자 운용사 중에서도 시가총액이 압도적으로 크고, 운용자산(AUM) 1조달러 금자탑도 가장 먼저 달성했다. 사모펀드(PEF)를 넘어 부동산, 인프라, 크레딧 등 다양한 영역으로 발을 넓히고 있다.

      다만 유달리 한국에서는 제 이름값을 못해왔다.

      초창기에는 이러지 않았다. 2010년 우리금융과 결성한 우리블랙스톤(6061억원 규모) PEF를 통해 아쿠쉬네트, 현대로지스틱스, 아이마켓코리아, NS홈쇼핑 등에 투자했다. 해당 PEF는 두자릿수 내부수익률(IRR)을 기록하며 성공적으로 청산했다. 공동 운용사인 우리PE는 이 때가 유일한 '황금기'였다. 

      이후 블랙스톤의 한국 내 존재감은 흐릿해졌고 2014년엔 한국 사무소 철수를 결정했다. 2015년 시몬느액세서리컬렉션 소수지분에 투자한 후 잠잠하다가 2019년에야 지오영 경영권 인수로 첫 대형 거래를 신고했다. 대성산업가스, 휴젤 등 M&A에선 들러리만 섰다. 그간 KKR, TPG 등이 거둔 실적에 비하면 블랙스톤의 이름값이 무색할 상황이었다.

      블랙스톤의 한국 투자 전략에도 의문 부호가 붙었다. 시몬느 투자 땐 회수 안전장치들을 거의 걸어두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상장(IPO)에 의존해야 하니 아직까지 자금을 빼지 못하고 있다. 지오영 때는 실사 전 인수 결정을 내렸다. 과감한 선택이었는데 다소 성급한 것 아니냔 평가도 있었다. 올해 MBK파트너스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장기 난제로 남았을 수도 있다.

      최근 몇년간 블랙스톤은 한국 시장에 다시 힘을 싣기 시작했다. 2022년 서울에 사무실을 다시 열었고 한국 부동산 팀도 새로 꾸렸다. 씨티금융지주 회장 출신 하영구 총괄고문을 한국법인 회장으로 선임했고, 안젤로고든 출신 김태래 대표를 영입했다. 2023년엔 국민연금 본사가 있는 전주에 연락사무소를 열며 출자자(LP) 관리 기능 일부를 한국으로 가져왔다.

      한국에 거점을 다시 마련했지만 곧바로 분위기가 달라지진 않았다. 에어퍼스트 등 여러 대형 M&A에 얼굴을 비췄으나 성과가 없었다. 금융가가 PE 업무에 맞느냐는 의문은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다. 블랙스톤에 있어 한국은 여전히 투자처보다 정보 수집처에 가까운 것 아니냔 지적이 나왔다.

      국유진 PE부문 대표는 다른 운용사와의 관계로 주목받기도 했다. 대상그룹 둘째 사위인 국 대표는 대상 계열 UTC인베스트먼트의 경영자문위원회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 UTC인베에 운용 독립성 문제가 불거졌고 LP들로부터 제재를 받기도 했다. 당사자들은 국 대표의 경영 관여는 없었다는 입장이다. 문제가 없었더라도 블랙스톤이 반색할 상황은 아니다.

      하영구 회장의 역할도 그닥 주목받지 못한다. 커머셜 뱅크 성격의 씨티은행 행장과 지주회장 등 15년 경력 빼고는 이렇다할 전문 투자 경력이 많지 않은 그가  '블랙스톤 한국회장'이란 타이틀을 달았을 때 의구심을 표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래도 블랙스톤은 여전히 한국에서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오영 매각으로 면을 세웠고, 지난달엔 제이제이툴스 인수에 성공했다. 부동산 분야에선 2016년 인수했던 아크플레이스를 팔았고, 김포 물류센터와 SM그룹 강남사옥 등을 인수했다. 부동산에 쓸 수 있는 드라이파우더가 많아 앞으로도 적극 움직일 전망이다.

      따져보면 블랙스톤 한국 오피스로서는 이제야말로 유의미한 성과를 내야 하는 시기가 됐다. 올해는 특히나 원달러 환율 고공행진 등으로 한국에 투자하기 유리한 환경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만히 있으면 한국에 굳이 따로 조직을 크게 유지할 이유가 있느냐는 의문을 피하기 어렵다. 블랙스톤은 100억달러 규모 아시아펀드 결성에 나설 것으로 거론되는데 돈을 안 쓰는 지역에 힘을 실어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옆나라 일본과 비교해도 블랙스톤 한국법인이 느끼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블랙스톤은 이달 일본에서 도쿄 가든 테라스 기오이초를 인수했다. 거래 규모는 26억달러로 외국 투자자의 일본 부동산 투자 사상 최대 규모다. 올해 아리나민제약을 약 3조원에 팔아 대규모 차익을 남기기도 했다. 시장 규모 차이라고만 하기엔 성과 격차가 크다.

      그러니 계엄사태와 탄핵정국이란 메가톤급 악재에도 불구, 블랙스톤 한국 오피스의 투자 의지는 꺾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른 유수의 글로벌 사모펀드들이 최근 국내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지켜볼 때에도 블랙스톤은 "본사의 한국 투자 유의 지침은 없었으며 장기적으로 한국 시장에 대한 굳건한 신뢰를 갖고 있다는 점"을 나홀로 피력하기도 했다. 그래야만 2014년 철수의 트라우마를 깨고 한국 오피스가 생존(?)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달리 말하면 셀 사이드에서는 블랙스톤 한국 오피스의 적극적인 투자의지를 십분 활용할 수 있는 기회도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