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파고스’ 일본은 글로벌서 러브콜…한국은 정치적 불안에 ‘외면’
입력 2024.12.18 07:00
    취재노트
    투자자들 일본 시장 주목…미디어 노출 늘려
    MBK 도쿄 연차총회, 수백명 모이며 인산인해
    한국은 '안 그래도 어려운데…' 정치 불안까지
    "韓,일본보고 준비해라" 글로벌 본사 압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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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20세기의 성공 이후 일본은 변화보다 ‘안주’를 택했다. 그 결과 세계 경제가 디지털 위주로 재편될 때 일본은 위기감조차 느끼지 않고 뒤처졌고, ‘갈라파고스’ 신세가 됐다. 자연스럽게 글로벌 투자 시장에서도 일본에 대한 관심은 떨어졌다. 그동안 한국이 반도체, IT, 벤처, 엔터테인먼트 등 여러 분야에서 글로벌 입지를 쌓으면서 아시아에서 ‘떠오르는’ 투자처로 주목받았다. 

      그런데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을 바라보는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특히 사모펀드(PEF) 등 투자업계에서 일본 시장을 주목하고 있다. 최근 일본 정부의 외국 자본을 향한 개방적 태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의 변화가 한순간에 이뤄진 것은 아니다. 국내 ‘밸류업 프로그램’의 롤모델 격인 일본의 기업가치 제고 정책은 앞서 10년간의 기업 지배구조 개정 노력이 이어진 결과다. 

      지난 10월 일본 공영방송인 NHK는 세계 최대 PEF 운용사인 블랙스톤의 창업자 겸 CEO인 스티븐 슈워츠먼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외에도 주요 글로벌 투자사의 임원 인터뷰를 연이어 진행했는데, 현재 일본 시장을 향한 글로벌 투자사들의 높은 관심도를 엿볼 수 있다는 해석이다.  

      NHK와의 인터뷰에서 슈워츠먼은 현재 일본 경제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버블 붕괴 이후 오랜 시간 동안 일본이 성장력을 회복하기를 기다려 왔고, 2010년대 아베 정권의 개혁을 거쳐 지금 일본은 큰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며 “과거 25년 어느 시기와 비교해도 해외로부터의 주목도가 매우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본이 스스로의 개혁을 통해 세계에 문을 연 것인데, 전 세계에 투자하는 우리 입장에서 보면 매우 긍정적인 변화”라고 덧붙였다. 

      블랙스톤은 올해 일본에서 활발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12일에는 세이부 홀딩스로부터 도쿄 가든 테라스 기오이초를 26억달러(약 3조700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번 거래는 일본 부동산 외국인 투자 사상 최대 규모이자 현재까지 블랙스톤의 일본 투자 중 가장 큰 규모다.

      앞서 6월에는 일본에서 디지털 만화 플랫폼 메챠코믹을 운영하는 인포컴을 2700억엔(약 2조5000억원)에 인수했다. 당시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와 일본 투자펀드 인테그럴, 글로벌 PEF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등과 경쟁했지만, 블랙스톤이 가장 큰 금액을 제시해 경쟁자들을 물리쳤다. 

      지난달 도쿄에서 열린 MBK파트너스의 연차총회에서도 일본 시장을 향한 글로벌 투자자들의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동북아 최대 규모 PEF인 MBK파트너스는 매년 한국·일본·중국을 돌아가며 연차총회를 여는데, 올해는 글로벌 기관투자자(LP) 300명 이상이 참석했다. 평소보다 훨씬 많은 인원이 참석하면서 MBK파트너스 임원들이 투자자들에게 호텔 방을 내줄 정도였다는 후문이다. 

      올해 MBK파트너스는 적극적인 일본 시장 투자를 이어왔다. MBK파트너스는 올해 7월 비타민과 피로회복제 등으로 유명한 일본 의약품 제조업체 아리나민제약을 블랙스톤으로부터 약 3조원에 인수했다. 앞서 연초 일본 노인 요양원 체인 기업인 헬스케어 기업 히토와홀딩스를 900억엔(약 8200억원)에 사들였다.

      MBK파트너스의 해외 기업 투자 중 일본의 유니버셜스튜디오재팬(USJ)는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해당 거래는 투자 원금 대비 수익이 8배에 이른다. 이 외에도 고메다커피, 타사키 등 인수 당시에 비해 기업가치를 2배 이상으로 인정받고 투자 자금을 회수하는 성과를 냈다. 

      현재 일본 최대 편의점 세븐일레븐을 소유한 세븐&아이홀딩스를 두고 벌어지고 있는 약 470억달러(약 67조원) 규모의 인수전도 글로벌 M&A 시장에서 ‘뜨거운 감자’ 중 하나다. 세븐&아이홀딩스의 편의점을 포함한 비핵심 자산 인수를 위해 베인캐피탈, KKR 등 글로벌 PEF들이 내달 초 진행될 경쟁입찰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한국에서는 투자자들이 ‘억지로’ 돈을 쓰는 분위기도 적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투자 성과가 없던 것은 아니지만, 여러 요인을 종합했을 때 향후 ‘업사이드’를 보기도 쉽지 않다는 시선이 많다.

      한 M&A 업계 관계자는 “최근 대다수의 글로벌 PEF들이 드라이파우더는 남이 있지만 한국에서 딱히 투자할 건도 뚜렷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해외에서 돈이 잘 안 모이고 있는데, MBK는 고려아연 사례를 한국 시장에 투자의 ‘새 모델’이 있다는 점을 어필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게다가 정치적 불확실성이 리스크를 더하고 있다. ‘깜짝 비상계엄’이 단시간에 정리되긴 했지만, 불확실성이 두드러졌고 여야 대립 등 정치적 갈등이 이어지는 점이 부정적인 요소로 인식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한국 증시 저평가를 해결하기 위해 추진했던 ‘밸류업 프로젝트’도 동력을 잃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M&A 시장에서 진행되던 딜들이 당장 무산될 정도는 아닌 분위기로 파악된다. 다만 거래 진행 속도가 느려지거나 거래 조건 측면에서 고려할 점이 많아지는 부담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지난달 말 블랙스톤은 산업용 절삭공구 제조사 제이제이툴스를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블랙스톤 PE 부문이 국내에서 바이아웃에 나선 것은 약 5년만인데, 공교롭게도 계약체결 직후인 이달 3일 비상계엄이 발표되고 탄핵정국이 맞물리며 묘한(?) 상황이 됐다. 사태 이후 거래가 됐다면 거래에 영향이 갔을 가능성도 있다.

      한 IB 관계자는 “글로벌에서 일본이 저렇게 잘 되는데, 한국도 몇 년 뒤면 곧 때가 올 테니 준비하고 있으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다”며 “일본은 수년간에 걸쳐 정부가 정책 등 준비해 온 점도 있는데, 외국 자본에 대한 저항감도 약해지다 보니 거래 볼륨이 큰 딜들도 최근 많이 거론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