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잠식' 석유공사,추후 공사채 발행 고려까지
원전ㆍ방산 등 현정부 중점사업 '조달' 수요 커져
제2의 기아차 BW? 투자자들 "위기 속 기회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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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윤석열 정부의 핵심 사업으로 꼽히는 동해 심해 가스전 사업(대왕고래 프로젝트)의 예산이 국회 본회의에서 전액 삭감됐다. 석유공사가 공사채를 발행하는 ‘플랜B’도 고려하는 등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해야 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기업 등의 시장성 조달 수요가 오르는 가운데 투자자들은 ‘위기 속 기회’가 있을지 눈여겨보는 분위기다.
앞서 10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산업통상자원부의 내년도 예산안 가운데 동해 심해 가스전 사업을 뜻하는 ‘유전개발사업출자’ 부문 예산 505억원 중 497억원을 삭감했다.
대왕고래 프로젝트의 1차공 탐사시추 사업에 들어가는 자금은 약 1000억원이다. 정부와 공사는 이 비용 가운데 절반인 약 500억원을 정부 예산으로 확보하고, 나머지 500억원은 공사가 자체 충당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번 예산안 처리로 정부의 지원은 어려울 전망이다.
정부와 공사는 예정된 1차 시추를 계획대로 진행한다. 이미 시추를 맡은 ‘웨스트 카펠라’호가 9일 새벽 한국에 들어와 부산 외항에 정박했고 17일 시추 해역으로 출발해 작업에 착수한다. 석유공사가 체결한 계약 규모는 4770만 달러다. 취소하면 위약금이 90%에 달한다. 정부 예산이 삭감됐어도 석유공사가 추가 자금을 마련해 추진할 수밖에 없다.
우선 석유공사는 1차 시추에 드는 약 1000억원을 전부 부담하겠다는 입장인데, 석유공사는 지난 2020년부터 완전 자본 잠식 상태가 이어지고 있어 재무 부담이 가중될 것이란 우려가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석유공사는 총부채 19조6000억원, 자본금은 -1조30000억원이다.
한국석유공사 공사채 발행으로 자금을 마련하는 비상계획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고 알려진다. 석유공사채는 정부가 보증하는 채권으로 신용 등급이 가장 높은 'AAA'다. 채권 업계에서는 공사채고, 예상 규모도 크지 않아 발행될 경우 수요 걱정은 없을 것이란 관측이다.
한 채권 업계 관계자는 “현재 공사채나 은행채 등이 금리가 많이 내려간 상황이라 발행에는 유리한 상황”이라며 “다만 석유공사를 비롯해 공사들이 계속해서 내년에도 공사채를 많이 찍으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종합적인 차원에서 국가 신용등급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소지는 있다”고 말했다.
공사채 발행으로 1차 시추를 마친다고 해도 끝이 아닌 게 문제다. 석유공사는 최소 5회, 10회 미만 시추탐사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시추 1공당 최소 1000억원이 필요하다. 정부와 공사는 2차 시추부터는 해외투자를 통해 필요한 자금을 유치한다는 계획이다. 비상계엄 이후 탄핵정국 등 한국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외국인 투자자를 유치하기가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많다.
한 야당 관계자는 “시추 자금을 시장에서 조달한다고 해도 정부 예산이 아예 삭감된 상황이라, 정치 상황에 따라 프로젝트의 동력 자체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왕고래 프로젝트뿐 아니라 탄핵정국 속 윤석열 정부에서 추진하던 다수의 정책이 전망이 불투명해졌다. 야당은 산업통상자원부의 '원전' 관련 예산은 정부안 그대로 반영했다. 24조원 규모 체코 신규 원전 최종 수주를 앞둔 상황인데, 국내 정치 상황과는 별개로 정책의 일관성이라는 측면에서 대외신인도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차세대 원전 설계 예산 등 원전 기술개발을 위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소관 예산은 대폭 삭감됐다. 국내 정치 변화에 따른 원전 정책 기조 변화 가능성도 있다.
‘불확실성’이 상수가 된 가운데 기회(?)를 엿보려는 투자자들도 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원전, 방산 등 그나마 우리나라가 '돈을 벌' 사업이라고 내놓던 것들이 동력을 잃는 분위기라 혼란스럽다”라며 “다만 금융위기 때 기아자동차가 발행한 신주인수권부사채(BW)가 좋은 투자처였던 것처럼, 어려울수록 기업 등 시장 주체들의 자금 조달 니즈는 커지기 때문에 ‘위기 속 기회’가 생길 때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도 있다"고 말했다.